영화를 좋아하는 아내는 밤이 새더라도 영화를 끝까지 봅니다.
영화보다 잠자는 것을 더 좋아하는 저는 졸려서 끝까지 못 봅니다.
침대에 누워 인터넷 영화를 보다가 스르르 잠드는 그 맛을 아는 사람은 압니다.
상영관에서도 잠들기 일쑤여서 졸지 않고 영화를 끝까지 본 날은 아이들이 박수를 칠 정도입니다.
"여보, 우리 인터넷 짝퉁 영화 그만보고, 영화관에서 진짜 영화 한 번 봅시다!"
토요일(10일), 아내 전화를 받고 젊은이들의 거리인 홍대로 나갔습니다.
애들에게 밥 차려먹으라고 하고 연애시절 기분을 내며 영화를 봤습니다.
결혼 이후, 가족행사로 종종 영화를 보는데, 다섯 가족이 떼 지어 갑니다.
왜 영화관에는 젊은 연인들만 몰려드는 것이야?
연애시절에도 그랬었지만 이날도 극장 물을 흐리고 말았습니다.
'소 닭 보듯이 하면 부부이고 다정하게 손잡고 다니면 불륜이다!'
애인 지참 필수인 불륜의 시대를 상징하는 말입니다.
우리 부부, 영화관에 들어설 때부터 영화 끝날 때까지 불륜의 자세 유지했습니다.
설탕 발라진 '츄러스'도 사먹었고, 젊은 연인에 뒤질세라 두 손 꼭 잡고 영화 봤습니다.
일곱 차례의 정사 장면이 무기인 <쌍화점>(감독 유하)은 화끈한 영화였습니다.
왕의 호위무사 홍림(조인성)과 왕후(송지효)의 노골적인 섹스 장면에선 손에 땀이 낫습니다.
"<왕의 남자>의 동성애+<색계>의 노골적인 섹스 장면을 덧칠한 영화!"
아내의 혹평에 영화 보는 눈이 낮은 저 또한 동의했습니다.
예상 혹은 기대에 못 미치는 영화를 보고나면 '돈이 아깝다'라고 말합니다.
다행히 한 사람 관람료인 8천원으로 두 사람이 영화를 봤기 때문에 덜 아까웠습니다.
롯데시네마는 '장기기증카드'를 제시하면 4천원을 할인해줍니다.
우리 부부는 장기기증 등록을 했기 때문에 할인 혜택을 봤습니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아내를 처음 만난 곳은 2005년 여름 외국인노동자 인권/선교단체에서였습니다.
아내는 '사단법인 지구촌 사랑나눔'(대표 김해성 목사)을 오래 전부터 후원해 왔습니다.
김해성 목사를 취재 과정에서 알게 돼 봉사에 나선 저는 단체 소식지의 편집 자원봉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내 역시 편집 자원봉사를 하던 차에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 것입니다.
카바레와 술집에서 만나지 아니하고 자원봉사자로 만났으니 얼마나 좋은 인상이었겠습니까.
누가 먼저 꼬리를 쳤을까요?
아내는 아담한 체구와 귀여운 용모를 갖춘 저의 이상형이었습니다.
게다가 내숭을 찾아볼 수 없는, 솔직담백한 성격까지 아주 '딱'이었습니다.
아내는 저보다 네 살 연상이었지만 철없고 잘 토라지는 저에겐 아주 맞춤이었습니다.
데이트 신청을 하고 싶었는데 자신이 없어서 삥삥 돌리다가 바다가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연안부두와 월미도를 오고가면서 갈매기처럼 끼룩끼룩, 중언부언, 횡설수설 했습니다.
자원봉사 동료로서 동행했던 아내는 곧 수상한 기미를 눈치 채며 흑심을 읽었습니다.
아내가 워낙 눈치 빠른 사람인데다, 제가 워낙 잘 들키는 체질이기 때문에 진행이 빨랐습니다.
아내는 즉각 검문을 실시했습니다. 부인이 있느냐 없느냐를 물었습니다.
없다고 대답 했더니 '그럼 친구처럼 좋은 사이로 지내자'며 선을 그었습니다.
이혼한 지 10년이 넘은 아내는 일과 공부, 신앙생활에 몰두했습니다.
대학원 두 군데를 졸업한 아내는 대학원총동문회 사무국장 등 여럿 직책을 맡았습니다.
게다가 모 방송 토크 프로그램의 고정 패널로 출연하는 등 연애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빴습니다.
아내는 확실하고 분명한 성격입니다. 때문에 남자들이 주변에 많았습니다.
활동량만큼이나 술자리와 여행 등 남자들과 어울릴 기회도 많았습니다.
돈 많고 신분 좋은 유부남들이 치근덕거릴 때마다 정확한 입장표명으로 정리했습니다.
난잡한 사생활을 경계한 탓도 있지만 신앙의 양심을 지키는 이유가 가장 컸습니다.
가난한 사랑이여, 여자를 울려라!
아내를 사귀면서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간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생모와 전처에게 버림받은 상처로 인해 여자에 대한 증오와 분노가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어디로 사라지고 사랑의 새순이 돋으면서 청춘의 열정을 품게 했습니다.
증오는 자신을 부술 뿐이라며, 사랑만이 온전하게 할 것이란 믿음을 주셨습니다.
여자로 인해 이토록 괴로워하다가 인생을 마치는 것도 비참한 일이었습니다.
저 또한 여자에게 사랑을 받고 싶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말입니다.
가방 끈은 짧지, 모아 논 돈은 없지, 혹(아들)은 두 개나 달렸지….
있어야 할 것은 없고, 없어야 할 것은 다 갖춘 막막한 홀아비였습니다.
40일 작정 새벽기도,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사랑을 얻게 해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사랑을 얻기 위해 거의 날마다 편지와 시를 써서 보냈습니다.
하나님께서 '두려워 말라, 내가 너의 배필을 준비했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 나이에, 악조건을 두룬 갖춘 당신을 어떻게 선택할 수 있겠습니까!"
큰 어려움 없이 혼자 잘살아 오던 아내는 저로 인해 괴로워했습니다.
더욱 괴로운 것은 제 상처의 내력 때문, 가엾은 이 남자를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장모께선 아들 둘 딸린 홀아비라는 사실에 기겁했고, 주변 사람 대다수도 반대했습니다.
객관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역전승을 거두는 짜릿한 경기를 우린 종종 봅니다.
천생연분, 사랑은 사람이 하지만 맺어주는 것은 하늘입니다.
새벽기도와 지극정성, 뜨거운 편지와 시(詩)가 마침내 아내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여자를 울려라!'
사랑에 속고 인생에 실패했습니까?
그런데도 사랑이 또 찾아왔습니까?
가난한 사람이여!
사랑하는 아내를 얻으려거든 여자의 마음을 울리십시오.
여성들이 돈과 지위를 중요하게 여기긴 하지만 가슴 깊숙이 그리워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의 시를 쓰십시오, 사랑의 고백을 편지에 담아 보내십시오.
그러나 거짓을 동원해선 안 됩니다. 여자는 민감합니다. 쉽게 속지 않습니다.
"시와 편지에 '뻑'가서 세 사내를 떠안았다!"
즐거움과 불평이 절반씩 섞인 아내의 비명입니다.
# 추신
아내가 다섯 번째 일기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시를 쓰고, 편지를 쓰는 사람이 요즘 어디 있느냐!
누가 시와 편지에 넘어가겠느냐!
나나 되니까 넘어갔지!
그렇다면 더욱 시를 쓰고, 편지를 써야합니다.
돈만 있으면 누구나 다할 수 있는 물질 공세에 의해서만 넘어간다면
그것은 사랑의 결합이 아니라 조건에 의한 계약일 수 있습니다.
조건이 이행되지 않으면 파기하는 게 계약입니다.
시와 편지가 먹혀들지 않는 시대입니까?
그래서 벽 같은 마음뿐인 시대라면 문 닫아야 합니다.
시와 편지 쓰는 능력(이걸 능력이라고 해야 하나요)이 부족하십니까?
그렇다면 시인의 마음, 편지 배달부의 마음으로 사랑을 전하세요!
[2009/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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