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말다툼을 벌였습니다.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집안이 썰렁하기에 별 생각 없이 보일러 버튼을 눌렀는데 그게 단초가 되었던 것입니다. "지금 우린 형편이 어떤 상태인데 보일러를 함부로 키느냐!"는 아내의 신경질 섞인 목소리에 "그깟 몇 푼 된다고 그러느냐"고 반발하면서 언성이 높아졌던 것입니다.
싸움의 본질은 보일러를 왜 트느냐! 틀지 않느냐! 라기보다는 돈 문제였습니다. 생활비는 아낀다지만 내년에 대학 진학 예정인 고3 학생 아들딸과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아들 한 명과 게다가 내년에 복학 예정인 2006학번인 제 학비까지 감안한다면 그야말로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입니다.
직장을 옮기면서 월급이 상당히 줄었습니다. 충분히 예상하고 각오했지만 막상 현실에 부딪치면서 마음이 답답해졌고 급기야 가정불화로까지 발생했던 것입니다. 아내는 마이너스 통장까지 바닥나자 처제에게 돈을 꾸어온 것입니다. 저희 집은 그야 말로 긴축재정에 돌입했습니다. 수입이 줄어들었으니 가능한 안 먹고 안 쓰기로 한 것입니다."
2006년 겨울 초입에 쓴 글입니다. 아내의 몸에 밴 '절약' 정신에 적극 부응하지 못한 시절에 발생한 사소한 마찰이라고 해야 할까요. 지금은 '그깟 몇 푼'을 아끼기 위해 눈을 부라리며 '새는 몇 푼'이 없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합니다. 이런 저의 태도 변화에 대해 아내는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2009년 1월 27일 현재 실내온도는 19℃, 난방 온도의 화살 방향은 '외출'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실내온도 20℃가 넘는 것은 금물입니다. 컴퓨터와 라디오 등 가전제품을 사용하지 않을 시에는 전기 코드를 뽑는 것이 이젠 익숙해졌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먹을 것 먹지 않고, 입을 것 입지 않고 사는 것은 아닙니다.
부부 싸움의 원흉은 여느 가정처럼 '돈' 문제입니다. 아내는 큰 지출에는 대범하지만 작은 지출에는 소심한 편으로 저와 정반대입니다. 아내는 시부모님과 친정 부모님 용돈을 매달 보내는 효녀효부입니다. 그리고 대학생 3명과 고등학생 1명 등 학생 4명의 학비를 책임지는 의지의 아내이자 어머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의 '쫀쫀함'에 삐질 때가 있습니다.
저와 두 아들은 '야식'을 즐기지만 아내는 '야식'을 비만의 지름길이라며 반대합니다. 잠자리 음식이 건강에 도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땡'기는 걸 어찌합니까. 그리하여 아내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두 아들과 함께 통닭을 시켜 먹었다가 'CSI' 수사관으로 불리는 아내의 수사망에 발각되고 말았습니다. 저는 '인생의 재미중에 재미는 먹는 재미'라고 항변하곤 하지만 아내는 ‘먹지 않는 게 건강에 더 좋은 데 왜 그런데 돈을 쓰냐!’며 쫀쫀한 추궁을 그치지 않습니다. 물론 아내의 '절약', '검소'에 대해서는 적극 찬동합니다.
올해 연말정산 중입니다!
월드비전 27만원
백혈병환우회 12만원
굿네이버스 15만원
한동대학교 12만원
여성재단 5만원
생명나눔실천본부 6만원
이랜드비정규직노동자돕기 30만원
황무지가장미꽃같이(부랑인시설) 6만원
외국인노동자의집 234만원
민족문제연구소 12만원
우리 부부가 지난해 각 기관 단체에 기부한 후원금을 대략 적어 보았습니다. 교회 권사인 아내는 월급으로 출석교회에 십일조, 부수입으론 개척교회에 십일조를 바쳤습니다. 지난해 연말로 부수입이 끊기면서 개척교회를 위한 십일조가 중단돼 아쉽습니다. 우리 부부 수입으론 쉽지 않은 지출인데, 지출할 곳에 지출하고도 큰 어려움 없이 지난해를 헤쳐 왔습니다. 내핍 훈련 덕분에 우리 부부는 청빈(淸貧)을 배우고 있습니다.
마이너스 통장마저 꽉 차서 걱정하고, 학비 때문에 아들을 군대에 보내야하고, 전기-가스-수도요금 등을 아끼기 위해 신경 곤두세우고, 자녀교육과 시청료 절약을 위해 TV를 없애는 등 긴축 재정에 돌입한 아내는 돈 문제로 속상해 하면서도 이웃을 도울 수 있도록 해주신 것을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기아와 병에 고통 받는 아이들,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오갈 곳 없는 이웃, 타국 땅에서 고통 받는 외국인노동자, 친일이 청산되지 않은 민족문제 등으로 가슴 아파하고 눈물 흘리며 작은 정성으로 동참하는 아내를 존경합니다.
가을 지고
긴 겨울 가도록
감나무 가지에
까치밥 남겨놓는
인정의 나라였습니다.
먼 길 가는 나그네
허기져 울까봐
가난한 부엌에
밥 한 그릇 남겨 놓는
나눔의 나라였습니다.
궁핍한 살림에
손님 들면
제 식구들 굶을지라도
따듯한 밥상 차리는
온정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입니까?
나그네와
손님은 물론
미물인 까치에게까지
잘 대접하던 나라가
왜 이렇게 됐습니까?
이런 글을 쓴 적 있습니다. 곰곰이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이웃을 잘 살피던 참 좋은 나라였습니다. 궁핍하고 허기졌음에도 불구하고 제 것이라고 다 차지하지 아니하고 까치 몫은 까치 몫으로 남겨두고, 가난한 나그네의 밥을 남겨두고, 찾아온 손님을 잘 대접하는 온정의 나라였습니다. 내 것뿐 아니라 남의 것까지 빼앗아서 부자가 되려는 선진국이라면 저는 그런 선진국 반대합니다. 차라리 궁핍과 허기 속에서도 나누며 살던 옛적 후진국이 더 좋겠습니다.
미움과 증오의 연말정산은?
사람들이 소득공제를 받기 위해 각종 영수증을 챙기느라 분주합니다. 올 한 해 동안 과연 얼마나 벌었을까? 올해 번 돈 중에서 혹시, 수고한 대가보다 더 많은 수입이 있었다면, 그로 인해 누군가가 손해를 입고 고통을 겪고 있다면 그에게 찾아가 용서 빌었으면 좋겠습니다.
'미안합니다. 눈앞의 이익 때문에 당신을 속였습니다!'
자신의 이익이 누군가의 피해를 통해 얻어진 것이라면 필연코 그러한 부(富)는 사상누각에 불과할 것입니다. 집을 빼앗고, 밥을 빼앗고, 인생을 빼앗고도 죄책감은커녕 행복하다고 비명 지르는 사람들로 인해 세상은 '아비규환'의 지옥입니다.
사랑보다 미움으로, 용서보다는 증오로 한 해를 살았습니까? 끊임없이 쫓아오는 애증(愛憎)의 그림자의 어두운 흐느적거림, 우리들은 우리를 끝내 사랑할 수 없습니까?
한 해가 저물고, 한 해가 시작됐을 뿐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못한다면 새해는 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누구도 사랑하지 못했던 한 해였다면 미움과 증오, 고통과 슬픔을 기필코 정산(精算)하고 가십시다. 부끄럽고 추한 얼굴로 새해를 지낼 순 없잖습니까?
소득공제를 위해 서랍 속에 모아 논 영수증을 챙기는 일도 중요하지만 닫힌 가슴을 열어 나로 인해 고통 받는, 분노와 증오의 가슴으로 부서지고 있는 그네들을 찾아가 용서의 공제를 통해 화해로 정산하는 모습이 중요합니다.
미움의 칼날로 겨누었던 형제, 친구, 아내, 자식, 부모. 아, 미움의 셈을 해보면 아찔할 지경입니다. 이토록 미움의 때가 덕지덕지 묻어서 우리의 마음에 평화와 평온의 실오라기도 찾기 어려웠는지 모릅니다. 미움의 명단에 있는 그 사람이 찾아올 것을 기다리지 말고 '내가 가마!'하고 마음을 다잡아 발걸음을 뗍시다. 무엇을 망설이고 있습니까!
* 두 번째 사진의 아프리카 소년은 케냐의 '레메데켓 로불루'입니다. 아내는 2004년부터 월드비전을 통해 소년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보내준 선물을 주변에 놓고 찍은 사진을 보내주었습니다.
[2009/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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