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멘 아멘 죄 중에 가장 큰 죄는 주일을 지키지 않은 죄가 아니고 십일조를 내지 않은 죄도 아니고 피눈물 흘리는 이웃을 보고도 눈 깜짝하지 않고 밥 잘 먹는 무정(無情)한 죄가 가장 큰 죄라고 눈 맑은 목사님이 말씀하셨다. 그 말씀에 무조건 아멘 했다. 시인의 창/예수시편 2011.08.10
피어난 꽃 피어난 꽃 피어난 꽃은 피어나지 않은 꽃보다 아름답고 태어난 아이는 태어나지 않은 아이보다 행복하다. 죄 없는 어미들아 청각장애아는 행복하다. 농아장애아는 행복하다. 몽고증아이는 행복하다. 중증장애아는 행복하다. 너무너무, 행복하고 영롱해서 봄꽃보다 먼저 피고, 샛별보다 더 빛나고 더 .. 시인의 창/눈물시편 2011.08.10
눈 내리는 오후 눈 내리는 오후 瑞雪의 오후에 기차가 지나간다. 지붕에 횐 눈 가득 태운 채 서행한다. 기찻길 옆 행인도 눈 맞으며 걸어간다. 건널목 차단기도 차량도 눈에 소복하다. 마음 없는 都市에 눈 내리면서 눈 세례 받은 都心이 회개한다. 그제 서야 쓸쓸하고 부끄럽다. 쓸쓸함이 하얀 눈발 되어 날린다. 부끄.. 시인의 창/예수시편 2011.08.10
홀 할미꽃 홀 할미꽃 중풍 든 할미꽃 영구임대아파트 통로에 하루 종일 홀로 앉아서 오매불망 누굴 기다리나 어미보다 먼저 떠난 무정한 자식 꽃들아 잡아줄 손 하나 없는 어둑어둑한 바람찬 세상아 아무리 기다려도 그 누구도 오지 않으니 가야지, 자식꽃 떠났던 슬픈 길 아무렴, 자식꽃 만나러가는 기쁜 길 시인의 창/눈물시편 2011.08.10
빈집털이 소년 빈집털이 소년 도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범인으로 지목한 담임선생은 소년의 결석을 불행 중 다행으로 여겼고 아흔 아홉 마리 양보다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아야 한다던 전도사는 소년이 교회에 나타날 때마다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드라이버 하나로 빈집을 터는 신기한 재주를 익힌 소년은 경비.. 시인의 창/노동시편 2011.08.10
비오는 날 소주 마시다 비오는 날 소주 마시다 칼질에도 세월이 베여서 쉰 줄의 여자는 날랜 솜씨로 개불 썰고 머리 희끗희끗한 그의 남자는 포장 밖 기웃거리며 손님 기다린다. 그림자의 움직임도 없이 조용히 취해가던 두 사내가 해삼 한 접시를 더 주문한다. 운치 있게 망했는지 망해서 운치가 있는지 덥수룩하게 수염 기.. 시인의 창/눈물시편 2011.08.10
여수부르스 여수부르스 꽃의 화사는커녕 새의 노래는커녕 칼침에 기습당한 사내. 날지 않으리, 날개도 없으니 울지 않으리, 눈물도 없으니 새끼 둘 데리고 파산의 짐 꾸려 흉흉한 항구에서 잠적했던 사내 상한 목청으로 훠이훠이 노래 부르네. 아련한 눈물도 흘리지 마라 갈매기야 피눈물로 철썩이지.. 시인의 창/눈물시편 2011.08.04
쏘다니던 봄 쏘다니던 봄 1. 반란은 도처에서 시작됐다. 꽃잎들은 선전선동 중이다. 바람 궐기시키며 오는 봄 남녘은 늘 선도적이었다. 꽃 피는 것도 반역이라면 각오하겠다, 꽃 산천 남녘. 2. 순천 낙안면 금둔사에 홍매화 피었는데도 스님들 새벽 예불에 곤했는지 발걸음 떼는 인기척도 없어 화장실 어디냐고 묻지 .. 시인의 창/눈물시편 2011.08.04
시인은 비겁하다 시인은 비겁하다 순천만 갈대들이 속삭인다. '시인은 겁쟁이다' 갈대 숲 도요새가 맞장구친다. '맞다, 시인은 겁쟁이다' 섬진강 물줄기가 수군거린다. '시인은 비겁하다' 망덕 포구의 달도 끄덕인다. '맞다, 시인은 비겁하다' 비루한 시대의 뒷골목에서 숨어, 시를 쓰는 시인들아 모여, 술.. 시인의 창/노동시편 2011.08.04
[그 남자의 재혼일기 22] 조호진 시인의 첫시집 꽃의 화사는커녕 새의 노래는커녕 칼침에 기습당한 사내. 날지 않으리, 날개도 없으니 울지 않으리, 눈물도 없으니 새끼 둘 데리고 파산의 짐 꾸려 흉흉한 항구에서 잠적했던 사내 상한 목청으로 훠이훠이 노래 부르네. (조호진 시인의 '여수블루스' 중에서) 여수를 슬며시 떠나야 했습니다. 잘 가라고,.. 부부의 방/남자일기 2011.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