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영화 <러브스토리>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요.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바다보다도 오래 된 달콤한 사랑의 이야기를, 그녀가 내게 일깨워준 사랑에 대한 단순한 진리를, 나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그녀는 내 삶 속에 들어와 내 삶을 온전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녀는 내 마음을 채워줍니다. 그녀는 내 마음을 채워줍니다. 매우 특별한 것들로, 천사들의 노래들로, 즐거운 상상들로, 그녀는 그렇게 큰 사랑으로 내 영혼을 채워줍니다.
나는 어디로 가든지 결코 외롭지 않아요. 그녀와 함께라면 누가 외로울까요. 내가 그녀의 손을 잡으려 할 때, 그녀는 늘 거기에 있어요. 사랑이 얼마나 지속될까요. 사랑이 시간으로 계량될 수 있을까요. 나는 지금 대답할 수 없어요. 그러나 이 정도는 말할 수 있어요. 난 알아요, 별들이 다 타서 없어질 때까지 난 그녀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녀도 거기에 있을 거예요."
오늘(17일) 새벽잠에서 깼는데 영화 <러브스토리>가 아련히 떠올랐습니다. 어제 내린 눈이 도심을 하얗게 뒤덮어서 그랬을 겁니다. 특히 눈처럼 하얀 사랑의 마음을 지니고 있으니 더욱 그랬을 겁니다. 올리버(라이언 오닐)와 제니(알리 맥그로우)가 설원에서 나누는 사랑을 그려봅니다. 그리고 불치병에 걸린 아내를 하늘로 떠나보내고 홀로 된 올리버의 가슴 아픈 대사를 새겨봅니다. 프란시스 레이의 감미로운 배경음악을 들으며….
사랑의 위대함에 대해, 사랑의 달콤함에 대해, 사랑의 진리에 대해 잘 알 수는 없으나 깊이 생각해 봅니다. 나의 삶을 온전하게 만들어준 아내, 큰 사랑으로 내 영혼의 빈 공간을 채워준 아내와 함께 있는 것이 꿈만 같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오래 지속되어야 합니다. 제니와 올리버의 지고지순한 사랑이 가슴을 아리게 하도록 아름다울지라도….
우리 사랑의 위대함은 그것입니다. 그저 달콤할 뿐이라면 사랑은 위대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상처 받고, 병들고, 주려가는 생명들을 온전히 낫게 할 때 사랑은 위대하다고 할 것입니다. 외롭고, 불안하고, 어둡던 가정에서 햇살 따스한 평온의 가정으로 옮겨진 딸아이와 두 아들은 깊은 내상을 치유 중입니다. 그러니 우리 아이들이 다 낫게 될 때 우리 부부의 사랑은 위대한 열매를 맺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부부가 꾸며가야 할 이야기는 <러브스토리>가 아니라 <패밀리스토리>이며, 오늘의 이야기들이 쌓이고 쌓여서 훗날엔 가족의 역사가 될 것입니다. 사랑과 믿음의 반석이 되기로 약속한 우리 부부는 아이들을 위해 축복기도를 쌓고 쌓습니다. 마침내 괄목하게 성장한 나의 아들과 딸이 우리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될 것이며 특히, 자신들이 경험한 아픔을 토대 삼아 가정해체로 울고 있는 이 땅의 아이들을 감싸 안아줄 것을 믿는 것입니다.
18일, 몸살 앓다
어제(17일) 아침이었습니다. 창문과 현관문을 열어 환기시키는데 갑자기 오한두통(惡寒頭痛)이 엄습했습니다. 그럼에도 6.25 참전 군인이신 장인어른의 상이군인 신청 문제, 비영리 미술공간을 운영하는 아내의 대학동문 방문, 정명훈의 찾아가는 음악회 관람 등의 일정을 강행했습니다. 게다가 방학 맞은 세 아이들을 위해 시장을 보느라 북적거리는 마트에서 시간 반을 시달렸습니다.
지난밤(18일) 오한에 시달리느라 거의 잠자지 못했습니다. '외출'로 되어 있는 보일러 온도를 한껏 올린 뒤, 오리털 파커와 추리닝까지 끼어 입었지만 여전히 오슬오슬 떨려서 잠잘 수가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딸을 깨워 아내와 함께 자도록 한 뒤, 딸의 방에서 전기장판을 고온으로 올린 뒤 온 몸을 지지면서 겨우 잠들었습니다. 아침 7시 무렵 저절로 눈이 떠졌는데 미열과 두통은 남았지만 오한은 사라졌습니다.
홀아비 시절, 일 년에 한두 번은 지독한 몸살을 앓았습니다. 경제 문제와 미래에 대한 불안, 온갖 스트레스를 혼자 감내하며 팽팽한 활시위처럼 삼백예순날을 긴장하며 살다가 한계 상황에 도달하면 둑이 무너지듯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부모형제와도 거의 소식을 끊는 등 마음 문을 닫고 살았습니다. 전처에 대한 분노와 증오, 홀아비의 외로움과 서러움 등 서너 개의 칼을 품고 살았으니 심신이 성할 리가 없었습니다.
아내는 일과 공부 등에 파묻혀 살았습니다. 딸을 대안학교에 보낸 뒤 혼자 살던 아내는 일터에서 삼시 세끼를 해결할 정도로 일에 파묻혀 살았습니다. 헛되게 시간을 보내는 것,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는 것, 사치하는 것을 죄로 여긴 아내는 작달막한 원더우먼이었습니다. 체구도 작은 데 어디서 에너지가 솟는지, 업무뿐 아니라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곳(외국인노동자 인권/선교단체, 교회, 대학원총동문회 등)에 전력투구하는 것입니다.
아내는 결코 철인이 아닌데 철인처럼 살았습니다. 결국 일 년에 한두 번은 병치레를 하는데 그 정도가 매우 심각했습니다. 약골인 아내는 중학교 때부터 신장염을 앓았는데 지난 97년엔 한쪽 신장 기능이 정지되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천식과 관절염도 꽤 중한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아내는 건강 문제로 자신의 일을 제한시키는 사람이 아닙니다. 성하지 못한 몸에도 불구하고 의지와 투지로 업무와 각종 대외활동을 완수하다가 결국 연례행사처럼 쓰러져 눕고 마는 것입니다.
몸 부실한 사내와 약골인 여인이 부부가 되었습니다. 부실+약골이면 그야말로 골골거리는 우환(憂患) 가정이 되어야 들어맞는 계산인데 반드시 그렇지 않습니다. 아내는 지난해 연말 신장염이 도지면서 일주일 가량 입원해야 했고, 저 또한 수술이후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병이 우리 부부의 몸을 지배하지는 못합니다. 그 회복 속도가 완연히 빨라서 병을 낫게 하는 근본 처방은 '마음'이라는 것, 의사들이 흔히 말하는 '안정'이 마음 깊게 자리 잡고 있기에 병균이 활개 칠 공간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아플 때 아내가 곁에 있고, 아내가 아플 때 내가 곁에 있으니 홀로일 때는 그렇게 두렵던 병조차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입니다. 아플 땐 모든 것을 용서받을 수 있고, 사랑의 혜택을 누리며 응석을 부릴 수 있으니 말입니다. 과거엔 병균이 침투하면 무방비로 당했지만 이젠 아내와 제가 함께 구축한 자기항체(自己抗體)가 방어하기도 하고 퇴각시키기도 합니다. 오늘 몸살은 곁에 있는 아내 덕분에 병원에 가거나 약을 먹지 않아도 나을 듯 합니다.
연애시절 아내에게 보낸 졸시 '쓰다만 시'입니다.
나의 상처로 인해
그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졸시 '쓰다만 시']
[2009/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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