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방/남자일기

[스크랩] [재혼일기 2] 아내의 두 애인은 멋진 사내였다

침묵보다묵상 2011. 8. 1. 17:20

 

정월 바람 분다

초경 같은 해풍

목판화에 침잠하듯

서행하는 갈매기

붉디 붉게 잠수하는

화염의 일몰이다

 

침묵 혹은 묵상하라

지는 것들은 지고

취할 것들은 취하라

어둠이 또 포위할지라도

더 이상 투항하지 마라

외로움 혹은 슬픔은 끝내

인생을 숙성시키지 않는다.

 

포장 속 술꾼들

두런두런 소주 켠다

건배의 꿈 희미해져도

술잔 엎지 마라

뒤집힐 것은 석쇠 위

아나고만이 아니다

일몰의 검붉은 잔영들이

무창포 방면으로 퇴각했다.

 

(새해 첫 여행에서 돌아와 쓴 졸시 ‘대천항에서’)

 

길에서 쉬고 싶어도 쉴 수 없는 나그네처럼 혹은 물살에 떠밀려 이리저리 떠다녀야하는 부유물 같은 고단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내면을 깊게 하는 여행을 떠나지 못했고, 떠나지 못했으니 돌아오지도 못했습니다. 그렇게 꿈의 좌표도 없이 이리저리 헤매던 방황의 시절은 자학 혹은 자해로 얼룩져서 기억의 도처에 흉터를 남겼습니다.

 

여행을 하면서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싶었습니다. 인생의 황홀함에 취하고 싶었지만 공평치 못한 인생의 출발점에다 역경(逆境)에 처한 삶으로 인해 노래는커녕 쓰러진 자의 탄식 혹은 핏대를 올리고 종 주먹질을 하느라 기운이 쇠하고 말았습니다. 드디어 목청이 쇠하였으므로 노래를 듣는 여행이고 싶습니다. 쓸쓸함 혹은 외로움이 아니라 지는 것들은 지는 대로 아름답고, 취한 것들은 취한 것들대로 정겨워지는 관조(觀照)의 눈빛으로….

 

아내의 30년 지기들

 

 

정월 초이튿날과 초사흗날에 걸쳐 새해 첫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어딜 나대고 다니기보다는 집에서 뒹굴뒹굴 거리거나, TV가 없는 탓에 인터넷 공짜 영화를 보거나 밀린 잠을 청하기를 좋아하는 ‘방안퉁수’ 우리 부부가 정초부터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은 아내의 30년 지기(知己)의 초청 때문이었습니다.

 

박 선생님은 아내의 30년 지기로 시인이자 편집-출판 전문가입니다. 대형 출판사에서 편집장을 지내다 자신의 출판사를 차린 선생은 문학 동네와 출판계에서 씀씀이가 넉넉한 사람으로 호평 받는 분입니다. 그런데 오래된 출판 불황 탓에 최근 기획 출판한 단행본이 족족 실패를 맛보는 등 곤경을 겪으면서 궁색해지자 호기가 많이 꺾였습니다. 가장의 어깻죽지가 꺾이면서 가정경제가 위기를 맞자 아내인 최 권사님(교회 직분의 일종)이 돌파구를 모색했습니다.

 

인스턴트 장맛에 길들여진 교인들은 퍼주기를 즐겨하는 권사님 덕분에 전통적인 고향 장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얻어먹는 것도 한두 번이지, 손 벌리기 미안한 교인들이 아예 판매할 것을 권유했지만 권사님은 돈 주고 파는 것은 인심 사나운 일이라며 꺼려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의 수입전선에 먹구름 걷힐 가능성이 희박하자 지난해 여름에 결단을 내렸습니다.

 

고향인 충남 보령 오서산휴양림 인근에 장류 생산을 위한 기지를 마련한 이들 부부는 구슬땀을 흘렸습니다.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며 장독을 사다 나르고, 마을 주민들로부터 후한 가격을 쳐서 토종 콩을 매입해주는 등의 초기 투자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음식 만들어 나누기를 즐겨하는 권사님의 신조를 요약하면 ‘음식은 생명’이라는 것, 그래서 좋은 재료와 손맛이 가미될 때 사람의 기운을 돋게 하는 음식이 빚어진다고 믿는 권사님은 재료구입에 돈을 아끼지 않았던 것입니다.

 

한국 발효음식의 대표인 된장이 생명을 살리는 음식이라는 걸 현대과학이 입증했습니다. 권사님의 장류 사업에 박수와 기대를 보내는 것은 바로 ‘생명을 살리는 음식’을 나누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마저 소비자의 눈을 속이며 저질 재료를 사용한 사실이 언론을 통해 고발되는 등 음식이 곧 독약이나 진배없지만 속수무책입니다. 잠시의 분노 끝에 레테의 강을 건너는 소비자들로 인해 악독한 기업은 활개를 치고, 생명을 살리는 장인정신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 시장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박 선생님은 사업을 펼치기 전부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코끼리만한 몸체가 몰라볼 만치 야윈 것입니다. 시인의 습성과 출판업계의 특성상 노동을 멀리하고 술잔과 가까이 지내던 선생님은 콩을 삶기 위한 불 때기 노역 등으로 몸살을 앓으면서 10kg 이상이 빠진 것입니다. 선생님은 중독된 욕망이 빠져나가는 몸살이라고도 했습니다. 대설(大雪)로 인해 길은 지워지고 인적마저 끊긴 산중에서 장작불을 쑤시다가, 산야(山野)를 보다가 ‘욕망이 나를 죽였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욕망의 독기가 빠져나가는 몸살, 서설(瑞雪)처럼 쓰여 지는 시는 욕망이 빠져나간 공간에 소복소복 쌓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내가 연정(戀情) 품었던 사람들

 

 

박 선생님은 아내의 또 다른 30년 지기인 언론인 출신 박 선생님 부부와 교육운동가 이 선생님도 함께 초대했습니다. 두 분은 지난 80년대 안양 지역 민주화운동의 선후배 사이로 아내가 연달아 사랑했던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사랑했다’는 말은 동지적 관계였다는 운동권적 표현이 아니라 연정(戀情)을 품은 사이라는 뜻입니다. 아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을 만나는 기분이 어떨까요?

 

아내가 첫 번째 연정을 품었던 이 선생은 소위 KS(경기고-서울대) 출신입니다. 여공생활로 학비를 대준 누이의 도움으로 한국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은 그는 안양지역 여학생들의 우상이자 가난한 학생들 사이에 신화였습니다. 눈물 젖은 밥을 먹은 자들이 욕망의 전차에 탑승하는 순간에 돌변해 가난한 형제들을 업신여기며 깔아뭉개는 자들이 있게 마련인데, 2MB가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는 가난한 형제와 누이들의 빵이 되고, 눈물을 닦아주는 손수건이 되느라 출세가도를 달리지 못했고, 끝내 가난한 한 여성과 결혼했습니다.

 

인간에겐 크게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첫 번째 길은 인간의 길입니다. 그 길은 인간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깨우친 이들이 걷는 가난한 길입니다. 두 번째 길은 욕망의 길입니다. 그 길은 성공을 정의로 여기는 자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성한 끝에 그것을 신화라고 허위유포한 자들의 길입니다. 그런데 욕망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첫 번째 길은 두 번째 길에 의해 짓밟히기 일쑤입니다.

 

정부 산하 청소년연구기관의 원장을 지낸 이 선생은 이명박 정부에 의해 짓밟혔습니다. 부당한 사퇴요구에 당당하게 대처하던 그는, 그가 걷는 길이 욕망의 길이 아니라 인간의 길이었기 때문에 끝내 사퇴했습니다. 야비한 수작에도 꼼짝 않자 다급해진 이명박 정부는 기관 통폐합을 최후의 압박수단으로 사용했고, 결국 연구원들의 피해를 염려한 그는 물러나고 말았습니다.

 

아내가 연정을 품고 좇았던 언론인 출신 박 선생님 또한 이명박 정부의 야비한 술수에 희생된 분입니다. 정부 산하 언론기관의 수장이었던 그 또한 이명박 정부의 사퇴압력에 시달렸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회유-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꼿꼿했던 그였지만 노조까지 사퇴 압박에 가세하면서 외로운 싸움은 한계에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독재정권 시절 검찰과 경찰 등 권력기관을 ‘시녀’ 혹은 ‘개’로 비하하곤 했는데, 권력에 빌붙는 야비한 이기주의 집단으로 전락한 이들이야 말로 그 어떤 비하의 말로 치부되어도 마땅할 것입니다. 야비한 싸움에서 물러난 그에게 희소식이 있었습니다. 중고교 시절 직접 가르치기도 했던 사랑하는 늦둥이 딸이 서울대 수시에 합격했다는군요. 돈을 쏟아 붓는 대치동 학습법이 아니라 부모의 사랑과 자기주도 학습에 의한 성취이기에 축하 받아 마땅했습니다.

 

우정의 자리에 술이 없을리 만무합니다. 박 선생님이 마련한 매실주와 최 권사님의 웰빙 성찬으로 교유(交遊)의 자리는 깊어갔습니다. 권커니 잣거니 술을 나누면서 해후의 기쁨을 나누다가 대천항으로 몰려가 장어에 소주잔을 기울기도 하고, 일몰의 장면에 취하기도 했습니다. 몸이 성치 않아 술을 별로 마시지 않은 저를 취하게 한 것은 사람의 향기였습니다. 욕망의 길을 걷는 자들에겐 악취(惡臭)가 나지만, 인간의 길을 걷는 이에겐 향기(香氣)가 나기 마련인데 정초부터 사람의 향기에 취했습니다.

 

칠푼이 같은 소리 좀 해야 하겠습니다. 아내가 멋진 여성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아내가 연정을 품었던 두 사내는(다행히 이루어지지 않음으로 해서 저에게 행운이 돌아왔지만) 존경의 마음을 품을 만한 인격자들이었고, 의기(義氣)의 사내들이었습니다. 끝내 실연으로 결별하지 아니하고 우정으로 승화시켜 서로의 삶을 지지하고 존경하며 30년 지기로 사는 모습은 감동입니다.

 

에필로그

 

 

 

오래 전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배철수씨가 ‘배고픔은 참을 수 있지만 외로움은 참을 수 없다’라는 멋진 멘트를 날린 적이 있었는데, 그 멘트가 오래도록 기억되는 것은 외로움이 치사량을 알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홀로 밥 먹고, 홀로 잠들고, 홀로 떠나는 것을 이젠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아내와 함께 여행을 떠났다가 함께 돌아왔습니다. 이제 여생에서 홀로 떠나야 할 여행은 영영 돌아오지 못할 편도(片道) 여행밖에 없습니다.

 

[2009/01/05]

출처 : 그남자 그여자의 재혼일기
글쓴이 : 햇살 따스한 뜨락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