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방/남자일기

[스크랩] [재혼일기 3] 아내가 차려준 생일상

침묵보다묵상 2011. 8. 1. 17:21

 

아내가 모처럼 잡채를 정성들여 만들었습니다. 짰지만 맛있었습니다.

아내가 쇠고기 미역국을 끓였는데 싱거웠습니다. 하지만 그릇을 비웠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횟감도 떠왔고, 족발도 사왔습니다. 그야말로 밥상 가득 성찬입니다.

 

어젠(2009/01/05일) 마흔 아홉 번째 제 생일이었습니다. 열일을 제쳐두고 귀가한 아내가 잡채를 요리하고 미역국을 끓이는 등 열과 성을 다해 푸짐한 생일상을 차렸습니다. 홀로 살아온 아내는 오랜 동안 살림을 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음식솜씨가 별로 없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그러니 짜기도 하고 싱겁기도 하지요. 하지만 음식을 어디 맛으로만 먹는 건가요. 간이 짜게 됐거들랑 밥을 듬뿍 먹으면 되고, 간이 싱겁게 됐으면 짠 반찬을 얹어먹으면 될 일입니다.

 

끝내, 사랑만이 온전케 하리라

 

모친 날 낳지 않으려고, 위장이 뒤집혀 천정이 뱅뱅 돌도록 금계랍(金鷄蠟 - 학질약, 50~60년대 유산제로도 사용) 수십 알을 먹었건만 모질게 태어났습니다. 노점상 아버지와 폐결핵 앓던 어머니 사이에 형과 연년생으로 태어난 출생의 간난(艱難)을 생각할 때면, 맹인가수 이용복씨가 절규하듯 부른 노래의 대목 '어머니 왜 날 낳으셨나요!'가 떠오릅니다.

 

바람이 휘몰던 어느 날 밤 그 어느 날 밤에

떨어진 꽃잎처럼 나는 태어났다네

내 눈에 보이던 아름다운 세상 잊을 수가 없어

가엾은 어머니 왜 날 낳으셨나요

 

(이탈리아 번안곡 '1943년 4월3일생' 가사 일부)

 

38 따라지 아버지를 두고 가출했던 모친과 외간 사내와 눈 맞아 달아난 전처…. 어미로 끝나지 않고, 아내였던 여자에게마저 버림받은 폐허의 자리에서 '다신, 여자의 옷이 내 집에 걸리지 않으리라!' 저주처럼 다짐했습니다. 다신, 여자를 사랑하지 않으리! 슬피 울며 이를 갈았는데, 폐허의 잿더미에서 꽃이 피듯 다시 찾아온 사랑이 치유의 손으로 안수해주었습니다. 그 사랑은 끝내, 사랑만이 온전케 하리라!는 믿음을 갖게 했습니다.

 

가장 큰 생일선물 ‘가족’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아빠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생일 케이크 촛불을 끄면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되뇌었습니다. 홀아비로 살던 10년 세월 동안 생일잔치란 언강생심이었습니다. 참고 견디면 옛말하고 살 날 온다더니 그렇게 왔습니다. 이 안온한 온기와 화사한 웃음을 누릴 수 있다니…. 맹인이 눈 뜨고, 앉은뱅이가 뛰는 것보다 더 큰 기적입니다. 아이들의 얼굴엔 평온과 생기가 넘칩니다. 아이들이 살아났으니 어찌 큰 기적이 아닐 수 있을까요.

 

상처 그리고 증오는 자학과 자해의 아비입니다. 절망은 더디게 오는 희망보다 더 먼저 엄습하곤 합니다. 불행은 대물림 속성이 있습니다. 웃음소리 새어나오는 불빛 환한 이웃집 창가에서 서성거리다 불 꺼진 집으로 돌아가야 했던 유년의 어둔 기억을 자식마저 대물림할까봐 두려웠습니다. 저주의 대물림을 끊어준 아내, 바람 앞에 촛불처럼 위태롭던 인생에 바람막이가 되어준 아내는 은인입니다.

 

처제가 겨울코트를 생일선물로 사주었습니다. 아내는 보라색 니트를 선물로 사왔고, 딸은 화장품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역시, 아들은 아들이었습니다. 큰아들은 "아빠, 제가 성공하면 차(茶) 사드릴게요!"라며 허풍으로 때웠고, 막내아들은 '아부지, 사랑합니다!'라고 쓴 생일카드로 대신했습니다. 분에 넘치는 선물입니다. 선물 중에 가장 값진 선물은 '사랑하는 가족'입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부터 가족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막내아들의 기타 반주에 맞춰 찬양하면서 성경공부도 하고, 합심기도도 드립니다. 돈을 모으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을 모으는 것입니다. 필요악(必要惡)인 돈이 과연, 가정을 지켜주는 울타리가 될 수 있을까요? 마음 모아 드리는 가족예배의 꽃은 기도시간입니다. 저의 예전 기도는 간구(懇求)의 기도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감사와 축복의 기도입니다.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감사와 축복의 기도를 드립니다.

 

환난의 씨앗은 욕망과 교만의 틈바구니에서 싹트고, 그 싹이 자라 재앙의 나무가 되고, 그 재앙의 뿌리가 가정까지 뻗치곤 합니다. 적은 먼데 있지 않고 집안에 있다고 했습니다. 더 무서운 적은 외부에 있지 않고 내부에 있습니다. 분노와 상처, 절망과 포기의 병력(病歷)을 소유한 적 있으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쉬지 말고 무릎 꿇어야 합니다. 마흔 아홉의 생일, 다섯 가족의 안식처를 온전히 지키는 파수꾼이 되기를 거듭 다짐합니다. 날마다 죽고 날마다 태어나는 신생(新生)의 노래를 부르며….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언 4 : 23)

 

 

[2009/01/05]

출처 : 그남자 그여자의 재혼일기
글쓴이 : 햇살 따스한 뜨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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