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창/노동시편

섣달그믐

침묵보다묵상 2011. 8. 4. 20:25

섣달그믐

 

   

공업사 떠돌던 친구는 밧데리 가게 차렸고

엘란트라 몰고 와 한참을 자랑하던 친구는

제철공장 반장이 됐다며 목을 세워 까분다.

중동 갖다온 친구는 13평 아파트 분양받았다.

시골 공고 졸업한 뒤 공장 밥에 설움도 많고

가방끈 짧다던 구박 잘도 견디더니

이제 밥술깨나 뜨게 됐다며 한숨 쉰다.

빛나던 청춘의 한때도 없었던 친구들

배나온 제철공장 반장은 담배를 끊었고

설비공은 위장 아프다며 소주를 삼간다.

근로소득세 꼬박꼬박 떼이고

재형저축과 국민연금에 희망 걸며

착하디착하게 늙어 가는 것이다.

사기는 못치고 도둑질은 염두도 못 내며

고작 제철공장 반장 되었다고 위세하고

밧데리 가게 주인으로 자리 잡은 친구들이

섣달그믐 길을 휘청휘청 걷는다.

소주 돼지갈비 몇 점에 흥겨워

노래방 몰려가 남행열차를 부르다

잘 살라고 잘 가라고 악수하며

부산으로 광양으로 여수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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