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발과 신념
흔들려서 아름다운 건 깃발뿐이므로
위태로운 밥 한술에도 흔들리고
새끼들의 짠한 눈물에도 흔들린다.
벗들은 목소리를 낮추는 지혜를 익혔고
아파트 평수와 자가용 성능에 관심을 쏟으며
필름 끊이지 않으려고 기교적으로 술잔 비운다.
가난은 벼슬이 아니므로 호미로 파든
사기 쳐 갈퀴로 긁든 돈을 벌어야한다고
돈이 정의이며 의리며 효도라고 못 박는다.
호미도 갈퀴도 없는 노동의 손뿐인 무산계급은
추락하지 않기 위해 고공 철탑에 매달리고
용접 불통이 튀겨 물집 난 살점에 소주 붓는다.
집 한 칸의 꿈 두둑한 월급을 간절히 원하지만
집 한 칸도 두둑한 월급도 챙길 수 없는 노동자
해방의 노래 끊기고 밟히고 희미해질지라도
흔들리지 않아서 아름다운 건 신념뿐이므로
내 무슨 지조와 신념으로 난을 치랴만
파업의 나팔이 울리면 파업이 될 것이고
가투의 때 되면 우르르 달려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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