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창/노동시편

깃발과 신념

침묵보다묵상 2011. 8. 4. 20:16

깃발과 신념

 

 

흔들려서 아름다운 건 깃발뿐이므로

위태로운 밥 한술에도 흔들리고

새끼의 짠한 눈물에도 흔들린다.

벗들은 목소리를 낮추는 지혜를 익혔고

아파트 평수와 자가용 성능에 관심을 쏟으며

필름 끊이지 않으려고 기교적으로 술잔 비운다.

가난은 벼슬이 아니므로 호미로 파든

사기 쳐 갈퀴로 긁든 돈을 벌어야한다고

돈이 정의이며 의리며 효도라고 못 박는다.

호미도 갈퀴도 없는 노동의 손뿐인 무산계급은

추락하지 않기 위해 고공 철탑에 매달리고

용접 불통이 튀겨 물집 난 살점에 소주 붓는다.

집 한 칸의 꿈 두둑한 월급을 간절히 원하지만

집 한 칸도 두둑한 월급도 챙길 수 없는 노동자

해방의 노래 끊기고 밟히고 희미해질지라도

흔들리지 않아서 아름다운 건 신념뿐이므로

내 무슨 지조와 신념으로 난을 치랴만

파업의 나팔이 울리면 파업이 될 것이고

가투의 때 되면 우르르 달려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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