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대하여'는 <노동해방문학> 창간호(1989년 4월)에 실린 시입니다. 노동해방의 시대, 혁명의 시대에 썼던 시를 20년 지난 2009년 다시 읽어봅니다. 노동자의 손은 아직도 우악스럽고, 하얀 손에 주눅들고, 가슴 막힌 억울함으로 제 가슴을 치는 등 크게 달라진 게 없습니다.
그래도 그땐 노동자를 묶는 사슬을 끊어버릴 뜻한 해방의 기운과 해방의 동지들이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더욱 여의치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노동자의 손이 온갖 차별과 절망을 끊어버릴 유일한 사랑임을 믿습니다. 고(故) 문익환 목사님이 옥중에서 제 시를 읽고 그 소감을 <옥중서신 2>에 평해 주셨는데 과분할 뿐입니다. 은하수처럼 맑고 횃불처럼 뜨겁던 목사님이 그립습니다.
그리운 목사님 하늘나라에서 잘 지내고 계세요!
전태일 열사를 목매어 부르시며 절규하던 그 울음을 아직도 그치지 않고 계신 것은 아니신지…. 목숨 걸고 굴뚝 농성을 벌이는 노동자, 장기 농성과 투쟁으로 힘겨워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임금체불로 생계 위협에 놓인 노동자들을 보시면서 눈물 흘리고 계시지는 않으실지….
손에 대하여
어찌 보면 오함마 같고
어찌 보면 쇠갈쿠리 같은
두꺼비 등짝 같은 이 흉한 손을 무엇에 쓸까
넥타이도 멜 줄 모르는 못난 손
식구에게 돼지고기 한 근도 못 사다주는 가난한 손
하얀 손에 주눅 들어 쩔쩔매는 겁쟁이 손
때에 절고 기름투성이인
우악스런 이 손을 어디에 쓴단 말인가
손이여,
후렌지에 손등 찍혀 피 적셔진 손이여
우리가 건설했다
거칠고 황량한 들판에
철골을 세우고
굴뚝을 붙박고
파이프를 용접하고 배관하고
그리하여, 기골 장대하게 우뚝 선 저 공장을
우리가 건설했다
그러나 우리는 빈 손
손은 계급이다
손은 무기이고
마침내 평등의 대지를 마련할 연장이며
끝내는 착취와 죽음의 노동을 몰아내고
해방 조국에 꽂을 깃발이다
어찌 보면 오함마 같고
어찌 보면 쇠갈쿠리 같은
이 거친 손으로
서러운 눈물이나 훔쳐서는 안되리
불의의 어둠을 찢어발길
이 뜨거운 주먹으로
허공 향해 종 주먹질이나 해선 안되리
암, 안되고 말고
손이여, 망치를 든 건설의 주인이여
그대가,
이 땅의 마지막 희망이고
이 땅을 결박시킬 모든 끄나풀을
단숨에 끊어버릴 유일한 사랑이다
인간의 모든 창조적인 문화 활동에 뿌리는 시(詩) 정신이라고들 하지요. 시 정신의 맑은 투시력은 인간과 세계와 역사의 본질을 투시할 수 있고, 거기에 상상의 날개를 달아 줌으로 해서 부단히 새 세계를 창조해 나가는 힘이거든요. 나를 몽상가라고 평한 사람이 있는가 본데 그건 한마디도 틀리지 않는 말이죠. 정치가뿐만 아니죠. 과학자도 상상력이 없어 가지고는 새로운 발견은 불가능하다는 게 널리 인정되어 있으니까요.
인간의 모든 창조적인 문화 활동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시가 지금 이 땅에서 마구 쏟아져 나오고 있지 않아요? 내가 첫 시집을 낼 때만 해도 자비로 내 가지고 시인들끼리 나누어 보는 정도였는데, 지금은 출판사마다 경쟁적으로 시집들을 출판하고 있거든요. 시를 쓰는 사람들이 많아짐과 동시에 엄청난 독자층이 자라났다는 이야기거든요. 일반 서민들이 시를 읽으면서 눈을 벼리고 상상의 날개를 펼쳐 세계로 훨훨 날고 있다는 이야기거든요. 반만년 이 민족 정신사에서 이처럼 시 정신이 폭발한 일이 일찍이 없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세계 정신사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지난 몇 해 동안 갑자기 시 세계가 노동자 쪽으로 확장되었다는 걸 이번에 들어온 「오늘의 시」 제2호에서 발견하고 정말정말 놀랐어요. 그러고 생각하니 오늘 우리의 눈앞에 전개되는 시 정신의 폭발은 전태일과 무관하지 않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그의 마지막 시는 동주의 「서시」 저리가라는 거 아니오. 김종태도 좋은 시인이었구요.
「오늘의 시」 제2호에 실린 노동자들의 시, 충격 아닌 게 없었지만 그 중에서도 조태진의 「손에 대하여」는 나에겐 특별한 의미가 있는 시군요. 나의 시에서 손은 발바닥의 민중성 앞에서 열등감에 빠지는 거 아니었어요? 조태진의 시를 읽으면서 나의 손은 귀족적인 손이었다는 것, 따라서 나의 발바닥은 귀족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드러나고 말았군요. 나의 순정성 밑에는 부르주아적인 민족 관념이 무반성적으로 깔려 있다는 성민엽의 평은 정확한 거죠.
들어보세요. “어찌 보면 오함마 같고/ 어찌 보면 쇠갈쿠리 같은/ 두꺼비 등짝 같은 이 흉한 손 무엇에 쓸까/ 넥타이도 맬 줄 모르는 못난 손/ 식구에게 돼지고기 한 근도 못 사다 주는 가난한 손/ 하얀 손에 주눅 들어 쩔쩔매는 겁쟁이 손/ 때에 절고 기름투성이인/ 우악스런 이 손을 어디에 쓴단 말인가” 이상이 1연이오. 그런데 그 손이 계급이요 무기라는 군요. 마침내 평등의 대지를 마련할 연장이며, 마침내 착취와 죽음의 노동을 몰아내고 해방 조국에 꽂을 깃발이라는군요. 건설의 망치를 든 손, 그것이 이 땅의 마지막 희망이고 이 땅을 결박시킨 모든 끄나풀을 단숨에 끊어 버릴 유일한 사랑이라는군요.
이 시 앞에서 내가 어찌 충격을 받지 않으리오. 민족의 앞날은 밝기만 하군요. [1989. 8. 22]
<문익환 전집 - 옥중서신 2>(사계절) P256-258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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