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방/여자일기

[스크랩] [그여자의 재혼일기 11] 딸과 남편 사이에서

침묵보다묵상 2011. 8. 1. 17:33

지금은 서로 이해하지 못하지만 인정하자고 해서 별 말없이 지나가지만, 아이들 문제로 남편과 저는 미묘한 신경전이 있었고, 지금도 조금은 존재한다고 봅니다.

남편이 막내에 대해 무조건적인 편애나 감싸는 것에 대해 맘에 안들지만, 겨우 뭔가 분별할 나이에 가장 힘들고 고통스런 시기를 보낸 것에 대한 애잔함이 있기에 그러는 것을 알고 봐줍니다.

 

저 역시 딸에게 그러한 맘이 있습니다. 4살부터 11살까지 딸은 아빠와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삼촌들과 살았습니다. 딸과 떨어져 있는 동안 매일 매일 웃어도 죄책감이 들고, 맛있는 것을 먹어도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딸도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기를 쓰고 딸과 같이 살게 되었지만, 그동안의 빈 공간에 대한 죄책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딸에게 엄마가 재혼함으로 원치 않던 새 아빠와 형제가 생겨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누리던 것을 지금은 참아야 하는 것도, 새로운 가족과의 불필요한 감정 소모라도 하게 될 경우에는  늘 미안했습니다.

기숙사에서 오랜 만에 돌아오면, 엄마가 다른 사람들과 가족을 이루고 있는 모습을 보면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그래서 전 딸의 표정이 굳기만 해도 미안함으로 딸에게 쩔쩔매는 경향이 있습니다.

 

남편은 이런 절 이해할 수 없어 화를 내곤 했습니다. 남편은 딸이 쉽게 삐지는 것(딸은 아빠와 함께 있을 때 엄마가 환하게 웃는 것을 보며 ‘엄마는 이제 나만의 엄마가 아니구나’하며 슬퍼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쉽게 삐지곤 했지요), 엄마와 친구처럼 대화하는 것 등을 이해하지 못했고, 집안 일을 돕거나 일에 익숙하지 못한 것들도 못마땅한 것 같습니다. 남편은 종종 ‘자식을 그렇게 키워서는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남편과 딸 사이에서 저는 힘들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사랑을 달라고 하니까요. 저는 똑같이 사랑하고 소중한데 두 사람 사이에서 눈치를 보게 되는 날이 많았습니다.

 

좀 오래된 이야깁니다.

어느 날 집에 돌아오니, 남편과 아들들이 식탁에서 통닭을 시켜 먹고 있었습니다. “00이는?” 하고 물으니, “삐져서 방에 들어갔어요.” “아, 정말 잘 삐져요.”하고 셋이서 딸을 성토하며 신나게 먹고 있은 것이었습니다(이 표현에서 여러 번 지웠다 썼다 합니다. 아마 딸을 삐지게 해놓고 너희들은 그렇게 먹고 있냐는 개인적인 감정이 섞여 있는 것같습니다.).

하여튼 걱정스럽다는 기색은 없이 태연한 것이 서운했습니다. 이유를 들어보니, 큰 아들이 툭 던진 말에 속상했던 건데, 저도 큰 아들 말투에 기분이 상한 적인 몇 차례 있었기에 딸의 행동이 이해되었지만, 남자들에게 섬세하게 이해해 달라기에도 애매했습니다.

그런데 딸은 밖에서 하는 이야기를 듣고 더 화가 나서 엉엉 울었습니다.

 

전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딸의 방에 들어가서 너의 맘을 이해한다고 하면서, ‘엄마 이혼할까?’ 물었습니다.

딸은 놀라며 ‘엄마 아빠 사랑하잖아?’ 되물었습니다. ‘아빠보다는 네가 먼저야. 네가 힘든데 엄마가 어떻게 행복해. 네가 원하면 엄마는 이혼할 수 있어.’ 했더니 ‘아니야, 참아볼게.’하는 것이었습니다.

 

딸의 방을 나오면서 얼마나 속이 상하던지, 천식이 있던 저는 느닷없이 기침이 심하게 나오면서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남편은 놀라면서 딸을 향해 ‘너 때문이야, 엄마를 힘들게 하고 있어’라고 소리쳤습니다. 전 남편을 향해 고함을 쳤습니다.

‘00이에게 뭐라고 하지마. 절대 아무 소리도 하지마’

그리곤 대성통곡을 했지요. 딸은 놀라서 “엄마 잘못했어‘하고 울었고, 남편은 놀라서 아무 소리도 못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하는 말이지만, 제 행동에는 다분히 의도적인 부분이 있었습니다.^^

둘 다 나에게 목숨 거는데 내가 이렇게 힘들어한다면 조심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지요.

 

작전은 성공해서 이후로는 피차 조심하고 있습니다.

남편과 딸은 서로 인정하고, 이해해주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해 주었습니다. 특히 많이 달라진 것은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입니다.

큰아들과 딸은 동갑입니다. 아이들 대학 보낸 사연은 다음에 나누겠습니다.

 

지난 주에 딸이 캠프에 가는 것을 서울역까지 남편과 함께 바래다주었습니다. 저녁을 맛있게 해서 먹게해주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아 서운한 기색이 역력한 딸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런데도 딸은 서운한 마음을 다 풀지 못하고 가네요.

쩔쩔 매는 나를 보고 남편은 웃습니다. 전 ‘당신이 막내에게 하는 행동을 나도 이해못하지만 그냥 인정해. 당신도 그랬으면 좋겠어.’ 하니, 내 말이라면 대체로 선선하게 받아주는 우리 남편 ‘그래, 그러자.’ 합니다.

 

가족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남편은 평온한 가정을 위해 기도를 쉬지않습니다. 그의 기도는 아이들 하나하나 부르며, 새가족의 평온과 평안을 위해 간구하고 간구합니다. 결코 이 가정을 깨는 그 무엇과도 싸우겠다고 다짐하고 다짐합니다.

 

지금은 대체로 두 사람 별 문제없이 잘 지냅니다. 다만, 여전히 60년대 농담을 하는 남편에 대해 딸이 퉁을 줄 때 빼놓고요.

출처 : 그남자 그여자의 재혼일기
글쓴이 : 햇살 따스한 뜨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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