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그룹홈 ‘들꽃 피는 마을’
[한겨레] 집없는 아이들아, 우리집에 올래? 지난 8일 경기도 안산시 와동의 한 다가구주택. ‘이랜드 들국화 가정’으로불리는 그룹홈이 있는 곳이다. 그룹홈은 가정 파탄으로 의지가지없는 청소년들이함께 살도록 만든 가정이다. 들국화 가정은 이랜드에서 지원해 만들었다. 이집에는 생활교사로 가장 노릇을 하는 유승권씨와 부인 여승현씨, 태어난 지 일곱달 된 아들 준혁이, 그리고 다른 가정에서 자란 다섯 여학생 등 모두 여덟 명이 한가족을 이루고 산다.
“선생님 용돈 주세요.” 중학교 2학년인 김정민(15・가명)양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서부터 돈을 달라고채근이다. 피시방에 간다고 한다. 오늘은 첫쨋주 금요일. 용돈을 받는 날이다.
중학교에 다니는 다른 두 아이들도 덩달아 조른다. 유씨는 “먼저 저녁을 먹자”고끼니부터 챙긴다. 아이들은 “한 시간만 놀다 일찍 들어오라”는 유씨의 말이 채끝나기도 전에 오천원짜리 한 장을 받아 현관문을 박차고 나간다.
고등학교 2학년인 다혜(19・가명)와 문경(19・가명)은 집에 남았다. 당번인다혜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문경은 캠코더를 들고 나와 이곳저곳에 카메라를들이댄다. 문경은 수다스럽다. 꿈이 뭐냐고 물으니 “하고 싶은 게 너무너무많다”고 온갖 직업 이름을 다 댄다. 말이 빨라 다 알아들을 수도 없다. 울산에서자란 그는 알코올중독인 아버지 탓에 어머니가 가출해 끼니도 제대로 잇지 못하는힘겨운 생활을 했다. 동사무소 사회복지사가 그를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에맡攘嗤?제대로 적응을 못해 1년 전쯤 다시 이곳으로 왔다. 유씨는 “문경이는상처입은 자신을 대면하기가 겁나 외부로만 시선을 돌리는 듯하다”며 “따뜻한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다.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경북 문경이 고향인 다혜는 어머니가 무능력자인아버지와 이혼한 뒤 외가에 맡겨졌으나 학교에 보내주지 않자 어머니를 찾아가출했다. 식당과 사우나에서 날품을 파는 어머니가 그를 이곳으로 데리고 왔다.
정민이는 어머니가 가출한 뒤 건설공사 현장을 따라 지방으로 옮겨다니는 아버지의보살핌을 받지 못해 거의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살아온 아이다. 같은 동네사는 목사님이 보다 못해 이곳으로 데리고 왔다. 3년째다. 들꽃 피는 마을에는이런 아이들을 위한 10곳의 가정이 있다. 와동에 여섯 가정, 선부동에 두 가정,월피동과 이동에 각각 한 가정. 이 ‘마을’에는 초등학교 6학년부터 대학교1학년까지 모두 47명의 청소년들이 23명의 선생님들과 함께 살고 있다. 34명은일반 학교를 다니고 있으며 13명은 ‘마을’에서 만든 대안학교, ‘들꽃 피는학교’에 다니고 있다. ‘마을’에서는 11월 초 월피동에 여학생 전용 임시쉼터도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들꽃 피는 마을’(wahaha.or.kr)은 우연한 기회에 시작됐다. 1994년 9월안산에서 목회활동을 하는 김현수 목사의 선양교회에 가출 청소년 8명이 몰래들어와 잠을 자는 일이 있었다. 김 목사와 부인 조순실씨는 갈 곳 없는 청소년들을보다 못해 자신들이 사는 아파트로 데리고 가 함께 생활하기 시작했다. 그룹홈이니청소년 쉼터니 하는 생각도 없었다. 힘들고 지친 아이들을 그냥 보듬고 싶었다고한다. 하지만 이웃들은 그렇지 않았다. 아이들이 아파트 계단에서 본드나 가스를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본 주민들은 김 목사를 찾아와 아이들을 내보내든지아니면 다른 곳으로 떠나라고 요구했다. 김 목사는 1개월 동안 아이들과승합차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어려움이 많았지만 아이들은 그의 품 안에서 밝고티없는 아이들로 거듭났다. 김 목사가 이룬 ‘사랑의 기적’을 지켜본 이들이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96년 11월 김진영 전도사가 여자 청소년과 가정을 이뤘고김 목사의 어머니인 권인희 권사도 한 가정을 맡았다. 각 가정에는 ‘잔디’‘토끼풀’ ‘민들레’ ‘메밀꽃’ 등의 이름을 붙이고 이들 가정을 통틀어 ‘들꽃피는 마을’로 불렀다. 이들 청소년이 들판의 잡초가 아니라 모진 풍파에 맞서며당당히 아름다운 들꽃으로 자라나라는 바람을 담았다. 그 바람에 따라 지금까지모두 14곳의 가정에서 300여명의 청소년이 사랑으로 거듭나 새로운 삶을 찾았다.
‘들꽃 피는 마을’은 98년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위한 대안학교,‘들꽃 피는 학교’를 만들었다. 이 ‘학교’에서는 국어, 영어, 수학 등 기초학습외에 현장체험학습, 직업탐방, 봉사학습 등이 이뤄진다. 특히 매주 목요일안산장애인복지관의 아이들과 함께 수업하며 장애우들의 도우미 노릇을 하는봉사학습은 나눔과 섬김의 마음을 길러주기 위한 것으로 ‘학교’가 중시하는 수업가운데 하나다.
‘들꽃 피는 마을’의 꿈은 가정해체로 불우한 시절을 보내고 있는 청소년들이사라질 때까지 그룹홈을 늘려가는 것이다. ‘마을’ 사무국에는 하루에도 10여차례 아이들을 맡아 달라는 문의 전화가 오지만 전세금과 운영비 마련이 쉽지 않아청소년들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한 가정을 꾸리려면 전세금 외에 한 달에 200만원가량의 운영비가 필요하다고 한다. 지금까지 ‘마을’의 운영비는 600여명의후원회원들이 감당해 왔다.
‘마을’에서는 그룹홈의 확대를 위해 기업이나 종교기관에서 한 가정씩을 맡도록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최근 이랜드의 이사들 10여명이 전세금 5500만원을마련하고 직원들이 매달 1만원씩을 모아 운영비를 보내주고 있는 ‘이랜드 민들레가정’은 그런 고민의 결과물이다.
유승권 사무장은 “불우한 환경 탓으로 엇나간 아이들은 사랑으로 보듬어 주기만해도 곧 정상으로 돌아옵니다”라며 “기업이나 종교기관에서 한 가정씩만운영한다면 수만 명에 달하는 불우 청소년들이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가정을마련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안산/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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