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호진 시인의 again&letter ①] 낙인에 대하여
삭개오처럼
외로워서 작아진 소년아
위험한데서 이리로 오렴
어미 잃은 가엾은 소년아
그것은 너의 죄가 아니므로
그렇게 지은 죄를 사하노라
품어주었으면 소년수가
과연 전과자가 됐을까요.
(조호진 시인의 시 '소년수')
총명하고 아주 잘생긴 미소년이 있었습니다.
그 소년은 셈도 잘하고 글도 빨리 깨우쳤으며
딱지 따먹기나 구슬치기를 해서 잃은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이대로 잘 컸으면 세상을 빛나게 할 좋은 재목이었습니다만!
그런데 소년의 부모는 자주 다투었습니다.
성격과 나이차이 등 원인이 아주 많았지만
가장 큰 원인은 어찌할 수 없는 가난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의 어머니가 가출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소년의 눈 속엔 총명 대신에 원망이 들어찼습니다.
그 눈빛으로 칼을 갈기 시작한 소년은 셈과 글을 팽개치고
영등포에서 신문을 팔고 구두를 닦으며 허기를 달래다가
자신처럼 칼을 가는 친구들과 어울려 소년원에 갔습니다.
그 소년이 저의 연년생 형입니다.
지금은 쉰다섯의 병든 사내가 됐습니다.
그는 술 먹고 노름하며 지내는 동네 건달인데
가끔은 경찰서라고 소식을 알려와 놀라게 합니다.
결혼 한 적이 없는 형은 혼자 삽니다.
처자식 없는 것이 그나마 다행입니다.
알코올 중독 수준인 형은 술에 취하면 아주 종종
흘러간 레퍼토리 같은 술주정을 수십 년째 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나를 버려서 내 인생이 이렇게 됐어!"
형의 주장 중에 일부는 사실이긴 하지만
아버지가 비명횡사하신 이후엔 자식을 거두었으므로
자식을 잘 키웠든 못 키웠든 버린 죄의 시효는 끝났습니다.
늙은 어머니를 원망하고 고문하는 형의 술주정은 부당합니다.
형의 인생은 어디서 잘못됐을까요?
어머니가 삼형제를 버리고 가출한 뒤에
형은 전수학교를 그만두고 구두닦이를 하면서
어린 깡패들과 어울려 다니다 소년원에 들어갔고
성인에 되면서 교도소와 경찰서를 들락거리는 불량배!
사회에 암적인 존재로 낙인찍힌 전과자로 살아왔습니다.
그 책임의 상당 부분은 원망과 책임 회피로 살아온
연약한 형에게 있고, 어머니에게도 일부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낙인찍어 외면한 세상은 아무런 책임이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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