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방/사랑편지

[스크랩] [그대에게 부친 연서(戀書) 32]

침묵보다묵상 2011. 8. 1. 17:51

빨래 마친 뒤에 쓴 새벽편지

 

Ⅰ.

 

모처럼
써 놓은 시 정리하려고
마음 다잡고 집에 왔는데
널려진 빨래 감으로 어수선한 집안
운동화 빨고 손빨래 하고 세탁 빨래를 널다
허리 곧추 세워 시계를 보니 새벽이 다 됐습니다.
시 쓰는 일보다 사는 일이 바빠서
사는 일이 시 쓰는 일보다 더 다급해서
시인의 길보다 삶의 길을 걷습니다.
삶의 길을 걷다보면 시인의 길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Ⅱ.

 

당신과 떨어질 때가 가장 싫습니다.
가장 싫은 것은 당신을 두고 나설 때입니다.
당신과 함께 있을 때가 가장 좋습니다.
가장 좋을 때는 당신의 손발을 어루만질 때입니다.
가장 행복할 때는 당신의 눈매가 편안할 때입니다.
가장 편안할 때는 당신이 편히 잠든 모습을 지켜볼 때입니다.

 

눈 내리는 밤길을 걸어 집에 도착하니 승아 솔이가 눈사람을 만들고 있었어요. 눈사람 보다 하얗지는 않지만 눈사람 못지않게 착한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덜 쓸쓸했습니다. 신발 일곱 켤레를 빨고, 산적한 빨래를 넌 뒤 허리를 펴니 새벽 1시가 넘었습니다. 아빠가 빨래를 하는 동안 승아 솔이는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승아는 아빠 대신 밥을 해 놓았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당신과 떨어질 때가 참 싫지만 그래도 한 하늘 아래 당신이 있어 감사한 마음을 갖습니다. 당신이 있으니 마음은 결코 슬프지 않습니다. 당신만 생각하면 어떤 일도 견딜 수 있습니다. 잘 견디는 일이 저에게는 필요하고, 잘 견디는 동안에 저는 더욱 튼튼해질 것입니다.

 

잠이 와서 잠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사랑합니다. 영원히 사랑하겠습니다. 영원히 사랑할 수 있도록, 감사하며 살 수 있도록 게으르지 않게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사랑의 마음 변치 않도록 지켜주시옵소서.

 

[2006-1-10]

출처 : 그남자 그여자의 재혼일기
글쓴이 : 햇살 따스한 뜨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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