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대하여
우리 두 사람은 매우 짧은 시간, 당신의 표현대로 당혹스러울 정도로 빠르게 진척된 것은 사실입니다. 세상의 잣대대로 하면 무엇에 홀린 것처럼 혹은, 비정상적인 것처럼 해석될 소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당신에게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이 보낸 지난 시간이 어땠는지 그리고, 나에게도 묻습니다. 지난 시간이 어땠어? 라고 묻습니다. 돌이켜보면 보면 가슴이 다시 아려옵니다. 아득하고 막막한 시간을 되돌아보는 것은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닙니다.
벼랑 끝에 선 날도 있었고 외줄타기로 위태위태하던 날도 있었으며 비수 품은 가슴처럼 날을 세우고 산 날이 많았습니다. 아주 많기는 사막 같은 가슴으로 감정의 변화 없이 살려고 아등바등 거렸습니다. 이 세상을 무관심으로 대하기 위해 또는, 나에게 관심 가져주지 않기를 바라며 먼 하늘만 바라본 적이 많았습니다.
사라질 듯, 보일 듯이 깜빡거리는 등대 불빛 때문에 항해는 계속된다고 합니다. 작은 불씨만 있어도 광야를 불사를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희망은 유효하지만 매우 적절해야 합니다. 눈앞에 우물이 있어도 두레박이 없으면 목마른 자의 목을 적시지 못하고 더욱 갈증 나게 할 뿐입니다.
그렇게 당신은 작은 불빛과 불씨로 나타나 제 가슴에 온기를 심어주더니 점차 만개한 봄꽃처럼 화사합니다. 그 보다는 불꽃 피웠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두레박이 되어 나의 가슴에 숨겨져 있던 우물을 마구 퍼 올리게 합니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릅니다. 산 자가 죽은 것처럼 숨죽이고 사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의 사랑이 급작스럽게 진척되는 것은 우리의 의지뿐 아니라 주님이 깊숙이 개입했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갈급했던 우리 두 사람이 사랑으로 온통 적셔지는 것은 매우 적절한 것, 아팠던 시간을 비추어보면 차라리 부족한 것은 아닐까? 그러므로 우리 사랑에도 호흡 조절의 시기가 오겠지만 달뜬 사랑은 계속될 것입니다.
[2005-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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