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방/사랑편지

[스크랩] [그대에게 부친 연서(戀書) 7]

침묵보다묵상 2011. 8. 1. 17:42

Ⅰ. 나에 대하여


나의 손을 잘 봐주십시오. 나의 손은 세상에 대한 분노와 원망으로 짱돌 쥐었던 손이었습니다. 하지만 나의 손은 바뀌었습니다. 짱돌 대신 두 손을 모아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모았던 손을 수없이 푼 채 주님의 손을 뿌리치기도 했고 원망도 했습니다. 분노로는 견딜 수 없는 세월을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나의 손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현실에서 나의 손은 부끄러운 빈손입니다. 아무 것도 줄 것이 없어서 손을 내밀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손을 감출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손은 남루하지만 무엇을 거저 달라고 하는 동냥의 손은 아닙니다. 더욱이 남의 것을 취해서 남루를 감추려고 하는 도적의 손은 더욱 아닙니다.


사랑과 헤어짐에 관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빼앗길 것 빼앗기고, 거짓에 배신당했어도 잡은 손 놓지 말아달라고 하소연 한 적이 있었지만 점차 그렇게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잘 가라고 손 흔들어주지는 못했지만 차마 잡지는 않았습니다. 손목 부여잡는다고 해서 떠날 사람이 떠나지 않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사람의 말을 잘 믿기도 하지만 때로는 믿지 않기도 합니다. 사랑의 말들과 약속으로 인해 입은 상처의 경험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의 흉터를 보고는 안타까워하며 슬퍼했고, 어떤 사람들은 흉을 봤고, 어떤 사람은 바보 같다고 손가락질했던 것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상처로 인해 고통이 컸지만 눈물로 지새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의심 많은 자가 됐습니다. 사람에게 위로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줄어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픔은 삭히고 흉터는 감추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매달릴 수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런 뒤로는 사람에게 매달리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아프면 아픈 대로 견디는 자가 되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Ⅱ. 당신에 대하여


당신이 겪는 혼란에 대해 저는 죄스럽고 안타까울 뿐입니다. 정말 가슴 아픈 일입니다. 장밋빛 인생을 주기는커녕 슬픔과 아픔이나 주는 제가 저마저 싫을 때가 있습니다. 저로 인해 겪는 당신의 괴로움을 지켜보는 저 또한 편치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지금 겪는 고통과 혼란이 훗날에 아름다운 증거로 바뀔 것입니다.


당신이 나에게 말했습니다. "아픔을 주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당신의 말을 믿고 또 믿습니다. 그럼에도 흔들리는 당신의 감정을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합니다. 당신을 흔드는 것은 바람이 아니라 생명과 죽음까지도 거래할 수 있는 현실입니다. 기도로는 당장 쥘 수 없는 것을 쥐게 할 수 있는 게 세상입니다.


우리의 믿음과 약속이 반석에 서기에는 짧은 시간입니다. 더군다나 아침저녁으로, 순간순간에도 수시로 바뀌는 게 우리의 마음인데 그것을 탓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당신이 아니라 누구라도 당신이 처한 상황이라면 그러할 것입니다. 아니, 당신이니까 제 곁에서 이런 혼란을 겪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당신의 남은 생을 지키는 반려자로서 그림자처럼 붙어있을 것이며 당신의 기쁨이 될 것이라고 언약합니다. 나에게 당신은 마지막 사랑이어야 합니다. 저의 에너지가 더 이상 지난 상처로 인해 소모되기를 이제는 진정으로 진정으로 원치 않습니다.


세상은 나를 편들지 않을지라도 주님은 저를 편들고 계십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으신 주님의 계획은 저를 더 이상 아프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더 이상 눈물짓지 않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저도 그렇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검은 것들이 나를 불안케 하면서 흔들면 주님은 "최승주는 너의 사람이다. 이건 너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라며 때에 맞춰 확신을 주셨습니다. 당신이 말을 듣지 않으면 처서라도 계획을 이루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인간적으로는 불안함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두 사람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추진할 때 일어날 일들을 걱정스럽게 떠올려보곤 했습니다. 너무 아플 수도 있을 것이고, 그 힘겨움이 나를 넘어뜨리려고 할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패배의 마음이 나를 흔들고 있습니다.


내일부터 한 달 동안 새벽예배를 합니다. 신장을 바치기로 했던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는 일을 더 이상 머뭇거려서도, 불순한 거래로 주님의 계획을 의심해서는 더욱 안 된다는 생각이 깊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미 주셨는데 주춤거리거나 의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내 신장을 받으실 그 어느 분에게 정갈한 마음으로 드려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계획들은 주님의 응답입니다. 이 일뿐 아니라 또 다른 일도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너무 구체적으로 지시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한 달 동안의 새벽예배를 통해 주님의 음성을 달콤하게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성령님이 주시는 기쁨에 흠뻑 적셔졌으면 좋겠습니다.


Ⅲ. 시에 대하여


제가 당신에게 드릴 수 있는 것은 시 입니다. 외롭고 아팠던 당신에게 고작 줄 수 있는 게 시여서 한숨이 나옵니다. 그래도 드릴 수 있는 게 시 뿐이어서 부끄러운 마음으로 당신에게 이 시를 바치겠습니다.


홀로였던 내가

홀로였던 그대

쓸쓸했던 신발을 벗기어

발을 씻어주고 싶습니다.

그 발아래 낮아져

아무 것도 원치 않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그대 안온한 잠을 밝히는

등불이 되어

노래가 되어


(나의 시 ‘청혼(請婚)' 전문)


[2005-11-07]

출처 : 그남자 그여자의 재혼일기
글쓴이 : 햇살 따스한 뜨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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