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창/빛과소금

문규현 신부님 묵상

침묵보다묵상 2013. 7. 8. 12:36

"부서진 세상 한 가운데서
2013년 7월 7일 연중 제14주일 묵상

"사람들을 조심해야만 한다.
너희는 분명 끌려가고, 넘겨지고, 심판 받을 것이다.
단지 몇 명이 아닌 모든 사람들, 모든 사람들에게 미움 받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예고하십니다. 끔찍합니다. 예수님 자신 뿐 아니라 자신을 따르는 이들은 똑같이 파국적 상황을 겪게 되리란 겁니다. 마음 준비 시키려고 애쓰시는 예수님 모습에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피할 도리가 없습니다. 이 고난과 박해를 피하려면, 예수님에게 등 돌리는 방법 밖에요. 그분을 부정하고 배신하거나, 혹은 외면하고 무관심해야 합니다. 주로 거리에서 별 볼일 없는 사람들과 어울려 다니는 예수님 일행. 몇 명 되지도 소수 집단인데, 뭣 때문에 이토록 혹독한 탄압을 받는 걸까요?

예수님께서 완전히 새로운 질서, 새로운 미래, 새로운 언어, 새로운 지도자 형을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랑과 섬김, 의로움과 평화, 존엄과 돌봄을 철저하게 구현하셨기 때문입니다. 빛으로 인해 어둠이 대조되고, 낡은 질서는 절로 허물어집니다. 기존 질서를 꽉 붙잡고 이득을 취해온 세력들은 당연히 큰 공포를 느꼈겠지요.

세도가들 뿐 아니라 백성들에게도 예수님은 두려운 존재셨습니다. 비굴하게 살지 말고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라, 너희는 노예가 아니다 하느님의 귀한 자식이다, 떳떳해라, 용기를 내라, 진심으로 사랑한다... 이런 말씀이 얼마나 낯설고, 헛소리 같았겠습니까. 사기꾼 아니면 미친 놈 소리 듣기 딱입니다.

예수님의 등장과 현존은 그 자체로 고착된 사회에 일대 혼란과 진통, 저항과 충돌을 불러왔습니다. 로마제국과 종교지도자들은 그분 처벌을 공모하고, 백성들은 자기들끼리 예수가 맞네 틀리네 치고 받고 갑론을박 합니다.

적당히도, 타협도, 중간지대도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 신앙의 핵심입니다. 예수님 제자직에 태생적으로 점지된 비극적 운명에 순종할 것인가, 돌아설 것인가.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그리스도를 따라 그곳으로 향하지 않으면 생명은 없다는 것을. 사랑도 의로움도 평화도 멀어진다는 것을. 부활도 그리스도도 없다는 것을. 빛은 가물해지고 어둠만 깊어진다는 것을.

박도현 수사도, 송강호 박사도, 또 모두가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강정 평화활동을 멈추지 않는 한 갇히고 또 갇힌다는 것을. 대한문에서, 밀양에서, 삼척에서, 또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현장 어디서든 마찬가지입니다. 역사의 고착, 정신의 고착, 영혼의 고착을 넘어서자면 폭풍 속으로 들어서야 합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하십니다. 세상의 잣대로 살지 말고, 우리 안에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영으로 살라"고 신신당부 하십니다.

우리는 폭풍으로 거친 세상을 거스르며 항해 중이지만, 저마다의 가슴은 미풍처럼 고요하고 단단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래야 목적지까지 잘 갈 수 있겠지요. 이 또한 하느님의 영만을 따르면 됩니다.

'하느님이 우리의 목자, 우리의 피난처, 방패가 되시면, 우리는 이 부서진 세상 한 가운데서 그분을 향해 발돋움할 수 있고, 여정에 있으면서 집에 있는 듯 느끼게 된다.' - 헨리 나웬

- 문규현 신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