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인터넷을 켰습니다. 습관처럼 뉴스를 흩어보는데 댓글 많은 뉴스에 시선이 쏠렸습니다.
'공중파 방송 휴먼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40대 남자가 부산 태종대에서 바다에 스스로 몸을 던져 숨졌다. 8일 낮 12시 24분께 부산 영도구 동삼동 자갈마당 인근 절벽에서 황모(40)씨가 바다에 떨어진 것을 주변에서 낚시를 하던 신모(42)씨가 발견, 해경에 신고했다.'
가슴이 철렁거렸습니다. 보고 또 봐도 절벽에서 뛰어내린 사람은 흑진주 삼남매 아빠 황정의씨였습니다. 여섯 단락으로 구성된 그의 투신자살 관련 보도가 댓글 많은 뉴스에 손꼽힌 것은 그와 흑진주 삼남매가 휴먼 다큐드라마 <인간극장>에 출연하면서 관심을 끌었기 때문입니다. 아빠 혼자서 삼남매를, 그것도 검은 피부의 삼남매를 어렵게 키우며 사는 모습에 시청자들은 마음이 아팠을 것입니다.
지구촌 사랑나눔에서 상담소장으로 일하던 2008년 4월, 삼남매 아빠가 가나 출신 아내의 장례를 도와달라고 요청해왔습니다. 제가 일하던 선교/인권단체에선 외국인노동자와 다문화가정을 돕는 여러 가지 사역들을 하는데 특히 장례 지원에 많은 경험이 있습니다. 김해성 목사는 타국에서 숨진 나그네들의 주검을 거두는 사역에 많은 수고를 하였는데 2008년 당시까지 1700구의 주검을 무료로 화장해주는 등의 장례를 치렀습니다.
삼남매 아빠는 원양어선 선원으로 일하던 1997년 가난 출신의 로즈몬드 사키와 현지에서 결혼, 그 이듬해 한국으로 와서 삼남매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2008년 4월 24일 갑작스런 뇌출혈로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외국인이 사망할 경우 본국 가족의 동의가 있어야 장례를 치를 수 있습니다. 황씨의 아내는 사망 당시 가나공화국 국민의 신분으로, 가족들의 동의를 거쳐야 장례가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가족과 연락이 두절된 상태였다고 했습니다. 주한 가나공화국 대사관의 협조도 원활하지 않은 가운데 그의 주검은 장례식장 냉동고에 보름 넘도록 안치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황씨의 요청에 따라 저희 기관 장의차에 로즈몬드 사키씨의 주검을 싣고 화장장으로 출발했습니다. 순서에 따라 주검은 화장장 직원들에게 넘겨졌고 황씨와 가족들은 유리창 밖에서 곧 화로에 실려 들어가게 아내와 엄마와의 마지막 이별에 눈물 흘렸습니다. 스위치만 누르면 주검이 화로를 타고 들어가 화염에 휩싸이게 될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화장 중단'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가나공화국 대사관에서 유족들의 동의 없이 화장하면 안 된다고 통보해왔다는 것입니다. 주검을 실은 장의차는 결국 주한 가나대사관에 도착했고, 협조도 하지 않으면서 장례절차를 막은 것에 대해 항의하며 주검을 대사관 문 앞에 내려놓고 철수했습니다. 이런 상황에 닥치자 대사관 측은 그 다음날 화장해도 좋으니 주검을 가져가라고 통보해오면서 장례를 마칠 수 있었고 그의 유해는 '지구촌사랑나눔'이 운영하는 안식의집에 안치되었습니다.
삼남매 아빠와 마지막으로 통화를 한 것은 2009년 5월 초순입니다. 그는 막노동을 통해 생계를 잇고 있었습니다. 홀아비 몸으로 삼남매를, 그것도 검은 피부의 자녀를 키우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을까요. 그는 큰딸(11세)과 둘째딸(10세)은 성격이 활달해서 친구들과도 잘 지내서 괜찮은데 사내아이인 막내(9세)는 아직도 엄마를 찾는다며 힘들어했습니다. 경제적으로 여유라도 있으면 용돈이라도 넉넉히 줘서 애들이 사먹고 싶은 것을 사 먹도록 하면 좋을 텐데 가난한 노동자 아빠 입장에서는 그렇게 할 수도 없다고 하소연했습니다.
그렇게 힘들 때마다 '이게 내 운명이니 받아들여야 된다!'면서 약해지는 몸과 마음을 다졌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엄마 없는 애들이라고 놀림을 받고, 피부색이 까맣다고 무시를 당하고, 가난하다며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그렇게 놀림 받고 무시당한 채 풀이 죽어 지내는 애들을 보면 앞이 캄캄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엄하게 키우려고 했답니다. 엄마 없다고 놀려도, 피부색이 까맣다고 놀려도, 가난하다고 무시해도 강하게 견뎌내고 이겨야 한다! 너희들을 지켜줄 사람은 너희들 스스로 밖에 없다! 고 강조하면서 자립심을 키우려고 했다고 했습니다.
그런 아빠의 마음을 아는 큰딸과 둘째딸은 아빠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막내는 아직 어려서 학교 친구들의 놀림에 견디지 못하는 것 같다고 걱정했습니다. 삼남매 아빠는 "엄마가 남겨주고 간 것은 사랑과 피부색인데, 계속 받지도 못하는 사랑을 주고 갔으니 마음이 아프고 엄마가 준 피부색 때문에 놀림과 왕따를 당해야 하니까 누굴 원망해야 할지 답답하다"면서 "피부색이 다르다고 해서 병을 옮기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차별하는지 모르겠다. 어른들이 차별하니까 아이들도 따라서 왕따시키고 그러는 것 아니냐!"고 하소연했습니다.
삼남매 아빠는 저에게 "삼남매는 제 인생의 모든 것이고 아주 소중한 보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제 희망은 이 보물들이 올바르게 커서 남보란 듯이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을 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당장은 아침 일찍 일어나 애들을 깨워 밥 차리고, 학교 보내고, 일하러 가고, 퇴근하는 대로 집으로 달려와 청소하고 그렇게 계속되는 생활이 힘들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일해서 돈도 모으고 좋은 집도 사겠다고 했습니다.
그런 그가 태종대를 찾았습니다. 자식들에겐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자고, 용기를 잃지 말자고 했지만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생활고에 지쳐 버렸을까요? 막막함과 답답함에 지친 그는 원양어선 선원으로 광활한 바다를 누비던 그 시절의 그 바다가 그리웠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술 먹은 기운에 뛰어내렸는지도 모릅니다. 사고 다음 날인 9일 그의 주검은 현지에서 화장되어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안식의집'에 도착해 아내 곁에 나란히 안치되었습니다.
엄마아빠를 모두 잃은 흑진주 삼남매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컸습니다. 그러나 그 관심은 이내 줄어들고 마침내 희미해질 것입니다. 누굴 탓할 순 없습니다. 이 아이들을 누가 거두어야 할까요. 하나님이 주신 귀한 생명이니 하나님의 사람들이 거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영육 깊숙이 입었을 상처를 만져주고 특히, 악령의 공격들을 막아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아름답게 빛나는 흑진주가 되도록 잘 보살피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정말 안타깝습니다. 김해성 목사가 경기도 광주시 도척면 일대에 추진 중인 '다문화국제학교'가 예정대로 9월에 개교했다면, 그래서 계획대로 삼남매를 학교에 데려다 기숙사생활을 하도록 했다면 삼남매 아빠의 양육부담은 덜어졌을 것이고, 태종대를 찾아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치자 개교가 늦춰진 것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김해성 목사, 학교설립 실무 책임자인 아내도 마찬가지 심정이었습니다.
'다문화국제학교'는 흑진주 삼남매처럼 다문화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 혹은 이주노동자 자녀들 가운데 부모와 사별, 이혼, 가난, 차별 등의 어려움에 처한 다문화 아이들을 위한 대안학교입니다. 여러 기관과 기업 등의 도움으로 학교 설립에 필요한 재정을 어렵게 마련했지만 행정 절차에서 차질이 빚어지면서 내년 3월을 목표로 개교를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아내가 편한 직장생활을 내려놓고 학교설립 일을 선택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 거기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홀아비로 두 아들을 키워야 했던 저로서는 삼남매 아빠의 고통을 조금은 느낄 수 있습니다. 얼마나 힘들면 자식을 두고 죽음을 선택했을까? 그런 한편으로 그에게 하나님의 사랑, 예수의 보혈을 나누지 못한 책임이 있다는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그에게도 하나님의 사랑이 전해졌다면, 예수의 보혈이 그의 피에도 수혈됐다면 그는 결코 태종대를 찾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고난과 연단을 통해 하나님과의 사랑을 더 뜨겁게 나누며 예수 십자가의 보혈을 찬양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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