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결정하였을 때, 남편에게 엄마, 친구들이 했던 또 하나의 공통된 말은 “얜 아무것도 할 줄 몰라요. 어떡하려고 그러세요?”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살림솜씨가 별로인 것은 사실입니다만, 어쩜 그렇게 약속한 듯이 제가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고 하는지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모두들 제게 “아무것도 할 줄 모르면서 어떡하려고?” 했습니다. 저는 태연하게 “그이가 한데요.”하고 하면,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했습니다.
결혼 전이지, 결혼하면 남자들은 다 변한다고.
그럴 때마다 남편은 언제나 “제가 잘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남편은 남자의 권위만 내려놓으면 세상이 편하다고, 각자 잘하는 것을 하면 된다고 대답했습니다. 자기는 살림하고, 나는 돈 벌고...
살림보다는 일이 좋았던 저는 점점 살림하는 재미를 잊어 갔습니다.
그래서 한 번 정리해 놓으면, 웬만해서는 흐트려 놓는 법이 없이 모든 물건을 제 자리에 놓아야 했습니다. 어질러 놓으면 다시 치워야 하니까요.
밥은 김치, 계란후라이, 김만 있으면 끝이었습니다. 그런데 딸은 이것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먹을 게 뭐 있어?’, ‘우리 뭐 먹을 거야?’가 주된 질문이었습니다.
딸을 기숙사에 보냈던 이유 중의 큰 요인이 밥을 세 끼 먹여준다는 것, 그것도 다 다르게 먹을 수 있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을 정도였습니다.
모처럼 집에 오신 친정엄마는 ‘으이구, 으이구’하면서 걸레질을 하셨고, 손녀딸이 걱정되tu서 이것저것 먹을 것을 준비해 놓고 가셨습니다.
그러나 엄마의 늦은 귀가로 혼자 밥 먹기 싫어 굶고 있는 딸을 보면서 ‘아악, 나도 마누라가 필요해’ 외치곤 했습니다.
그런데 8여년을 혼자 아이들을 키워온 남편은 정말 살림꾼이었습니다.
홀애비 자식이라는 소리를 듣게 하지 않으려고 옷도 깨끗이 빨아 입히고(너무 심하게 빱니다. 겨울교복을 일주일마다 빨아야 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운동화는 운동화 속에 코를 들이대고 냄새를 맡고는 빨아댑니다. 남편의 ‘사고’치는 내용은 따로 모아서 이야기하겠습니다.),
바닥은 무릎꿇고 빡빡 닦아내야 속이 풀리고, 먹는 것은 많이 해놔야 안심이 되는 것 같습니다(늘 양 조절에 실패합니다.)
다행히 결혼 후에도 쉽게 지치는 저를 위해 남편은 약속을 지키고 있습니다.
아침잠이 많은 남편을 대신해 요즘에는 제가 먼저 일어나 아침준비 하는 경우가 많아졌지만,
집안을 청소하는 것, 빨래를 널고 개는 것은 거의 남편이 몫입니다.
남편은 언제나 고기(특히 돼지고기)와 생선, 과일, 아이스크림, 야쿠르트, 라면 등등을 떨어지지 않게 냉장고를 채워 놓습니다.
어찌나 먹는 것을 좋아하는지 결혼하고 나서 남편과 제일 먼저 싸웠던 이유는 먹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먹는 것은 활동을 위한 최소한의 칼로리만 섭취하면 된다는 나와, 삶의 기쁨 중의 중요한 하나가 먹은 것라는 남편과의 갭은 크기만 했습니다.
뭘 그리 많이 먹냐는 나의 타박에, 그동안 당신은 먹고 산 것이 아니라는 남편의 항변은 결혼 초기 잦은 다툼거리였습니다.
아마, ‘왜 치사하게 먹는 것을 가지고 그러냐?’는 딸의 말이 없었다면 여전히 투덜거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딸이 기숙사에서 오면, 남편은 기세등등해져서 “내가 맛있는 거 해줄께.”라고 큰소리를 쳤고,
내가 잠자는 것을 확인한 남편과 아이들은 몰래 야식을 시켜 먹었습니다.
남편의 김밥은 정말 예쁘게 말고, 된장 넣어 삶은 돼지고기 맛은 일품입니다. 멸치볶음, 오징어조림은 이미 경지에 다달았고,
자칭 ‘인터넷 요리선생’을 통해 맛있는 요리들을 해냅니다.
우리들은 ‘맛있다. 죽인다’만 연발하며 먹어주면 최고의 답례가 됩니다.
하루는 친정에 갔더니 엄마가 먹을 것을 봉지에 담아주시면서 “조서방, 이리 좀 와보게.” 하시면서 먹는 법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여동생이 “왜 형부를 불러, 딸 놔두고.” 퉁을 주니, 엄마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습니다. “저 년이 해먹니.”
이제 친정 엄마가 오시면, “어머, 집안이 반들반들한 것좀 봐, 베란다도 깨끗하네.”하며 좋아하십니다.
“마누라, 마누라 하더니 조컸다!”
PS : 문제는 남편과 동화된 저에게 부작용이 생긴 것입니다. 달덩이 같은 얼굴에 몸무게가 8킬로 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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