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아버지와 싸우다 싸움이 진정될 때쯤이면 웅크리고 앉아 중매장이를 욕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도 들어서 외울 지경이 됐지만, 요지는 이렇습니다.
“그 중매장이 놈이 속여서 10남매의 맏인 것을 6남매라고 속여서 결혼을 하게 만들어서 날 이 지경까지 오게 했다. 내가 그 놈을 만나면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엄마는 연한 김씨의 뼈대있는 집안으로, 경주 최씨의 뼈대를 자랑하는 우리 할아버지의 장남, 우리 아버지에게 스물 두 살에 시집을 오셨습니다. 그런데 중매장이가 당시 9남매(막내고모는 저와 두 달 차이로 태어났습니다.) 의 장남인 아버지를, 6남매의 차남이라고 속였던 것같습니다.
엄마는 결혼식 하는 날, 동네 아줌마들이 “아이고, 저런 색시가 어떻게 9남매 속에서 시집살이를 한데?”라는 수군거림을 듣고 기절할 듯이 놀랐다고 합니다. 후에 외할머니가 이 말씀을 듣고 통곡하셨다고 했지요.
거기다 더 기가 막혔던 것은 직업군인이셨던 우리 아버지가 전역을 하시고는 별로 성실치 못한 가장이셨으니 엄마의 고생은 말로 다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싸움이 날 때면 언제나, 늘, 한결같이, 지치지도 않고 중매장이 욕하기로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살아온 온갖 고생스런 이야기 보따리를 울음과 함께 서너 시간은 족히 풀어놓으시곤 했습니다.
어려서는 짜증스러워도 표현하지 못했지만, 6학년 때인가, 엄마가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하자 냅다 소리를 질렀죠.
“아, 그럼 살지 말고 이혼해! 지겹지도 않아?”
엄마는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 년이?”하고는 말문이 막히셨습니다. 그러더니
“그럼 넌 누구하고 살건데?” 하고 물으셨습니다.
“누구하고 살긴? 난 고아원에 갈거야.”
엄마는 싸움도 잊고 픽 웃으시던군요.
그런 우리 엄마와 아버지는 결혼 50주년도 넘게 채우시고 올 4월에 돌아가셨습니다.
사실 돌아가시기 전날까지 엄마와 아버지는 투닥투닥 말다툼을 하신 것같습니다.
남편을 만나게 된 것은 소리없이 중매를 선 목사님때문이었습니다.
남편과 전 서로 모르는 상태로 시민단체의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는데,
외로와서 결혼하고 싶다는 남편의 말에 ‘최국장을 소개해 줄까?“라고 하셨다나요.
당시 기자였던 남편은 인터넷에서 제 이름을 검색하니,
당시에는 나름 유명했던 저의 글이나 강연, 인터뷰 기사들이 있어 대략 신상파악을 하고 있었답니다. 미인인 모습까지(으하하!!)
목사님은 단체의 소식지 편집위원으로 우리 두 사람을 위촉하고는 회의에서 자연스럽게 만나게 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저는 그 회의이후 들이대는 그에게 나중에서야 내막을 듣게 됩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중매장이의 가장 중요한 주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습니다.
즉 중매자들의 학력, 경력, 재산정도, 가족관계 등의 신상에 대해 파악하고 비교하여 적절한 상대를 만나게 해는 것이 중매장이의 의무이건만, 목사님은 중매의 우선순위를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로 꼽으셨던 것입니다.
후에 목사님에게 야속하다는 듯 조기자에 대해 아시냐고 물었을 때, 목사님도 살짝 당황하신 듯, 미안하신 듯한 표정으로 ‘얼마전에 들었다’라고 하셨든가 ‘들었어요’ 하셨든가 하던 생각이 나는군요.
그렇지만, 전 엄마처럼 중매장이 욕은 하지 않습니다.
아직 ‘빡시게’ 싸움을 하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실제 중매장이는 목사님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알기 때문이지요.
그 이야기는다음에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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