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방/여자일기

[스크랩] [그 여자의 재혼일기 1] 한국에서 여자로 혼자 산다는 것

침묵보다묵상 2011. 8. 1. 17:29

 

재혼일기를 쓰자고 하니, 먼저 혼자 살던, 아니 딸하고 살고 있었으니 더 정확하게는 남편이라는 존재 없이 살던 때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지만, 그때의 생각이 납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가장 황당했던 것은, 재혼하고 나서 고위자과정 친목모임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기수 중에 40대의 의사가 있었는데, 어느 때부턴가 그의 부인이 우리 모임에 자주 참석하곤 했습니다. 그날은 공식적인 부부동반 모임이라 처음으로 저도 당당히(?) 남편과 함께 참석했습니다.

 

화제는 자연 저의 재혼으로 옮겨졌는데, 그 부인이 “나는 최 국장이 재혼해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 진짜 다행이야.”하는 것입니다. 듣기에 따라서는 위하는 말인 것 같지만, 부인의 말투나 행동은 ‘혼자 사는 여자가 내 남편의 모임에 온다는 것이 정말 불안했다. 결혼했으니 안심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임은 나를 포함하여 그 주변에 있던 여자들은 누구나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니? 내가 남편하고 특별하게 만난 것도, 연락한 것도 아닌데 왜 그런 생각을?

 

10년 전인가, 저의 처지를 동정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친구도 일찍이 혼자가 되신 어머님과 살고 있었습니다. 친구는 어머님도 친목 모임에 나가면 이런저런 의심과 오해를 받아 괴로워하셨다고 했습니다. 저는 친구에게 ‘언제쯤이면 그런 불편한 것에서 벗어났다고 하시더냐?’ 물었더니 ‘오십은 넘어야 하는 것 같다’고 대답하여 한숨 쉰 적이 있었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매우 불편했습니다. 누구를 만나든 오랫동안 혼자 산다는 굳이 말을 하지 않았고, 못했습니다. 이유야 대한민국 사람이면 대충 다 짐작하는 일이겠지만, 만나면 호구조사부터 하는 한국 사회 속에서 가족관계를 속여야 한다는 것은 뭐든 가슴에 담지 못하고 말하기 좋아하는 저에겐 몹시도 힘들고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제 나이가 되면 만나는 남자들은 거의 남의 남자입니다. 참고로 남편을 만났을 때 제 나이 오십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남편과 만났을 때, 그가 가진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누구의 남자도 아니라는 희귀한 사실 때문에 부담없이 만나다보니 결혼까지 이르게 된 것이지요.

 

이제부터 재혼일기를 써나가려고 합니다. 참으로 조심스러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저희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춰내는 이유는, 사실 글쓰기를 독려한 분이 계신 것이 첫 번 이유지만, 우리와 같은 상황 속에 있는 누구가의 위로와 격려가 되길 바람에서입니다. 부디 흉보지마시고 격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출처 : 그남자 그여자의 재혼일기
글쓴이 : 햇살 따스한 뜨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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