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창/눈물시편

눈 내리는 날 기차가 지나갑니다!

침묵보다묵상 2008. 1. 13. 08:26

 

1. 눈 내리는 날의 기차

 

도심 속의 기차는 낭만일 수 없습니다.

교통 체증의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집값 하락의 배경이기 때문입니다.

 

瑞雪의 오후에 기차가 지나갑니다.

그냥 지나가는 게 아니라 눈을 맞으면서 지나갑니다.

기찻길 옆 추억의 사람들도 눈을 털지 않고 걸어갑니다.

 

서울역을 출발해 신촌을 지나 어딘가로 향하는

이 기차는 평상시와 달리 오르막 길을

씩씩대며 지나가지 않고 온순하게 지나갑니다.

 

차단기가 내려진 건널목 앞의 차량들도

교통 체증을 이해하며 경적에 손을 뗍니다.

집값 보다는 사람의 추억을 생각합니다.

 

 

2. 눈싸움의 나라

 

눈+어린이= 눈싸움?

 

그 기찻길 옆 초등학교에서는 어린이들이 눈놀이를 합니다.

눈싸움을 하는 게 아니라 눈이 기뻐할 정도로 잘 놉니다.

아이들이 눈놀이 하듯이 세상 많은 것들이 놀이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땅에서 싸움 때문에 죽은 많은 원혼들이

이 땅을 떠나지 못한 채 싸움 부추기는 것은

놀이가 신명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잘 놀다 신명나서 어깨도 걸고 마음도 나누어야 하는데

잘 놀다가도 허튼 소리 하나에 싸움박질로 이 편 저 편으로 나뉘어

다시는 놀지 않을 작정으로 패거리질 하면서 죽이고 죽였으니

어찌 눈놀이조차 눈싸움이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3. 눈 내리는 날의 都心

 

도시에 마음이 있을까요?

있다면 어떤 마음일까요?

검은 마음, 횐 마음, 파란 마음?

 

혹시라도 도시에 마음이 있다면 횐 마음과 파란 마음은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횐 마음과 파란 마음이라면 저렇듯이 검은 것들이 우르르 몰려다니진 못할 테니까요.

차라리 마음 없는 것이 나으니까 都市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마음 없는 도시에 눈이 내립니다.

도시에 마음이 내리면서 도심이 됩니다.

그제서야 쓸쓸하고, 부끄럽고, 떠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도시가 어두워집니다.

도시가 어둠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온갖 분탕질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눈 오는 날은 부끄러움이 싸르륵싸르륵 쌓입니다.

노숙자들에게 버려진 이불조차 되지 못했음으로

소주를 마시다 잠든 노숙자가 동사했음을 부끄러워 합니다.

 

비오고 눈 내리는 날에도 가출한 아이들,

숙박비와 밥값이 되어주기는커녕 싸늘한 눈빛으로 짓밟았음으로

그 눈빛이 무서워 소년원으로 간 아이들에게 부끄럽습니다.

 

맹인의 하모니카와 동전 바구니를 보고도 눈감은 맹인이었음을

맹인의 찬송가는 외면한 채 십일조와 건축헌금으로 면죄부을 샀음을

가난한 이웃과 그 곁에 쓰러진 예수에게 못질하면서 외친 할렐루야가 부끄럽습니다.

 

그러했으므로 눈이 아프게 쌓입니다.

눈물의 이웃들이 눈물의 다리를 건너 다가올까봐

다리를 끊고도 모자라 보초까지 세웠던 비정의 마음에 눈이 쌓입니다.

 

횐 것들은 어두운 것들을 부끄럽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도 한 때는 횐 것들이어서 부끄러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뭇해지면서 부끄러움이 바래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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