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창/눈물시편

천식

침묵보다묵상 2011. 8. 4. 20:34

천식 

 

 

둘째 새끼야 어미 가슴이 아프다.

경방공장에서 얻은 병이 도지는구나.

찬마루 바닥에서 너를 홀로 낳았는데

탯줄 목에 걸린 너는 핏덩이로 새파랗게 질렸는데

명줄 길어 용케 살아나서는 시 쓰는 어질병에 걸려

어미 숨통에 불을 놓는 구나 천불을 놓는구나.

 

아비는 투전에 미쳐 목계장터로 가고

강 건너 모래톱 홍수 넘치던 그해 여름

배꽃 같은 언니 잡아먹은 선창 앞 강물

왜 그다지도 시퍼렇게 흐르던지

늙은 올케 구박에 눈물도 허기져

구운몽 읽자던 책보는 아궁이에서 타고

제천 가는 길 원주 가는 길

참깨 훔쳐 달아나던 밤이 있었다.

 

카바이드 불빛 어둠 발라 먹던 영등포 역전

팔리지 않은 오꼬시 다라니 옆에서 난장 꿀리던

어미의 고단한 잠을 깨운 것은 노점 단속반이었다.

좌판 걷어차는 구둣발 포대기에 업힌 너는 자지러지고

길바닥에 뒹굴던 오꼬시 비명 지르다가 엎어지고

! 이 새끼야 네놈이 뭔데 내 새끼 울려 이 개새끼야

단속반 멱살 잡고 뒹굴다 사나흘 구류 먹었다만

안 살란다, 피멍든 객지 밥 38따라지 서방 매질에

잠든 새끼 머리맡에 눈물의 밥상 차리고 달아난 부산행

금창여관 조바로 적량 앞바다 함바집 주모로 휘파리 골목으로

전라도 가파른 타관살이 바튼 숨에 치여 헐떡이는데

울 어미 시름 앓다 죽은 병이 이 병일까

석삼년 자리에 누웠다가 일어섰다가

마른 젖가슴 짓 뜯다 숨 끊게 한 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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