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상담

가해자와 피해자의 악순환

침묵보다묵상 2014. 6. 5. 10:18

가해자와 피해자의 악순환

 

새 엄마가 8세의 의붓딸을 학대하다가

숨지게 한 것도 모자라서 11세의 언니에게

그 죄를 넘기려고 햇다가 들통 난 경북 칠곡 계모 살인 사건!

 

소풍가고 싶다는 아이를 때려

죽음에 이르게 해서 세상을 들끓게 했던

울산 계모  학대 사건. 그리고 PC방에서 게임하느라

28개월 된 아이를 혼자 놔두며 우는 소리 듣기 싫다고 죽여 베란다에 방치한 사건!

 

이런 아동 학대 이야기들을 접할 때마다

죽어가는 순간까지 아이들이 느꼈을 공포와 외로움에 참으로 가슴이 아픕니다.

 

나는 이런 사건을 대할 때마다

죽어간 아이들도 아이들이지만

그들을 학대한 부모들의 삶이 자꾸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들의 삶은 어떠한 인생행로를 밟아 온 삶이었을까?

 

얼굴도 이름도 전혀 모르는, 한 번도 그들을 만나

사연을 들은 적은 없지만 아마 그들 대부분은 집안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으며 살았던, 거절감으로 그 인생이

제대로 된 사랑 한 번 받아보지 못한, 많은 상처와 분노를 가진

사람이었을 것만은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때려 죽음에 이르게 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상처 때문에 , 분노 때문에, 적대감을 주체하지 못하고

자신과 가정과 이웃과 사회에 독화살을 마구 쏟아대고 있을

제2의, 그리고 제 3의 무수한 이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중략)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상처를 입은 자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상처의 가해자와 폭력자로 그 위치를 탈바꿈하며

사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악순환입니다.

 

어떤 폭력이든 간에 폭력을 행하는 사람이나 집단의 배후에는

마음의 상처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600만의 유태인을 학살한

권력의 폭력자 히틀러 역시 성장과정의 상처가 그렇게 처참한 폭력을 발생시킨 뿌리였습니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지 않고 계속 품고 있는 사람은

언제든지 폭력을 행할 수 있는 가능성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마음의 상처는 가정폭력에서 싹틉니다.

첫째는 어머니나 아버지가 서로 간에 주고 받는

신체적인 폭력이나 언어적인 폭력이오, 또는 힘을 가진

부모가 자녀에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가하는 폭력입니다.

 

이런 폭력 속에 자라는 아이는 성장한 후에

똑같은 폭력을 행할 수 있습니다. 이런 폭력 속에 자라는 아이는

성장한 후에 똑같은 폭력을 행할 수 있습니다. 많은 연구 보고서가

폭력의 대물림 현상에 대해서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폭력은 유산처럼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정폭력은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간을 양산하는 온상입니다.

가정에서 양성된 폭력 가능자가 교회로 가면 교회 폭력집단을 만들고,

정계로 가면 정치 폭력자가 되며, 학교로 가면, 학교폭력 당사자가 됩니다.

 

그렇기에 가정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사회를,

국가를 위기로 몰아가는 폭력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정폭력은 암과 같습니다.

암은 세포의 일부분이면서 한 생명 전체를 죽입니다.

우리 사회에 암처럼 퍼져 가고 있는 가정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우리는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상처를 치유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이미 일어난 불행한 기억과 상처를

가위로 오려 낸 것처럼 싹둑 잘라버리면 좋을 텐데….

그런데 쉽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마음의 상처는 잊으려 하면 할 수록,

더욱 더 우리의 무의식 속에 또렷이 새겨져 있으며, 누르면 누를 수록

튕겨져 나오려 애씁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저지른 부당한 잘못들을

없었던 일로 치부할 수도 없고, 우리의 기억에서 지울 수도 없고,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런 우리들에게 삶은 마치

두 갈래의 길을 내어 놓는 것 같습니다.

그 길은 어쩌면 예수님이 말씀한 좁은 문과 넓은 문에 대한

비유와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것은 별 노력없이도

아무나 갈 수 있는 넓은 길과 수고하며 애쓰며 나아가야 되는 좁은 길로….

 

나는 그 넓은 길을 '상처 입은 가해자'가 되는 길로,

그리고 좁은 길은 '상처 입은 치유자'의 길로 부르고 싶습니다.

 

상처 입은 우리들에게는 두 갈래의 길,

곧 '상처 입은 가해자'가 될 것인지 아니면,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될 것인가 하는 선택이 있습니다.

 

우리의 환경 속에서 몸에 배어버린 행동양식인

우리의 혈기, 분노와 성냄으로 상처 입어 으르렁거리는

가해자로 살 것인지, 아니면 험한 아픔은 많았지만

그 고통을 통해 얻은 상처가 다른 사람을 치유하는 원천으로 사용되는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 정태기 크리찬치유상담대학원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