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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게인스토리 2] "손자가 소년원에서 깽판을 부렸대요!"

침묵보다묵상 2014. 5. 20. 12:56

"진원(가명)이가

소년원에서 깽판을 쳤대요.

진원이 걔 때문에 못 살겠어요.

어서 빨리 죽었으면 좋겠어요!"

 

소년의 조부에게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늙고 병든 조부의 목소리는 몹시 지쳤습니다.

소년원에 간 큰손자가 깽판을 부리는 과정에서

한 원생이 얼굴을 다쳐서 병원에 갔다는 것입니다.

피해자 부모를 만나서 합의를 봐야되지 않겠냐는 소년원 측의

연락을 받고서는 안절부절하다 저에게 연락을 했다는 것입니다.

 

소년에겐 팔순이 되어가는 병든 조부가 유일한 보호자입니다.

소년은 모스크바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빠가 러시아로 유학 갔다

러시아 여인을 만나 소년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두 살 때 엄마가

소년의 곁을 떠났고, 아빠는 그 이듬해 사망하면서 한국에 왔습니다.

엄마를 대신해 소년을 키우던 조모는 가출한 소년을 찾으러 나섰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뇌경색 환자인 조부가 소년을 돌보고 있습니다.

 

연쇄방화범으로 구속된 소년을

처음 만난 곳은 성동구치소입니다.

그 뒤로는 조부를 모시고 감별소로 불리는

서울소년분류심사원과 6호 처분 위탁시설인

대전효광원으로 김밥과 잡채 등 음식을 장만해 면회를 가고,

만기 출원한 소년을 데리고 할머니가 계신 파주의 납골당에 갔습니다.

 

소년은 가정과 사회에 복귀했지만

열네 살부터 시작된 가출과 음주흡연,

앵벌이와 노숙생활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할머니의 패물을 훔쳐 술을 마시고는 또 가출했습니다.

 

소년에게 문제가 생기면

조부는 저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저 말고는 하소연할 곳도 마땅치 않았고,

소년과 조부와의 인연이 해를 넘기다보니

의지가지해도 될 만한 관계가 된 것입니다.

 

그렇게 노숙자들과 서울역에서 술을 마시는 소년을 데려와서

목욕 시키고, 옷을 갈아 입혀서 사람처럼 며칠 지낸다 싶으면

소년은 귀신에 홀린 듯 뛰쳐나가 앵벌이하며 노숙생활을 하다가

악취 쩌는 몰골로 나타나 밥 챙겨먹고, 사람처럼 얼마간 편히 지내다

또 다시 뛰쳐나가 술에 취해 휘청거리는 노숙생활을 하다 사라졌습니다.

 

지난해 겨울과 올 겨울에는

소년을 찾아 종로 명동을 헤맸습니다.

소년의 사진이 인쇄된 전단지를 만들어

노숙인 무료급식소와 명동성당에 붙였습니다.

소년이 병역법 위반으로 고발될 처지에 놓였으니

소년을 보면 저에게 연락해달라는 취지의 전단이었습니다.

 

전단지를 부착하며 행방을 좇는 저로 인해

소년은 노숙생활과 앵벌이에 지장 받게 됐습니다.

소년이 나타났다는 제보를 받고 그의 단골 술집인

포장마차에 들렸더니 주인아주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진원이가 대낮부터 술이 잔뜩 취해 찾아와서는

선생님 때문에 (노숙생활과 앵벌이가) 힘들어졌다고,

인생이 괴롭다고 횡설수설 원망하다가 좀 전에 갔습니다."

 

겨울 내내 잠수함을 탔던

소년이 경찰에 붙잡혀 나타났습니다.

소년원 동기와 함께 차량을 훔친 것입니다.

소년을 다시 만난 곳은 서울소년원이었습니다.

조부와 함께 면회를 가서 소년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그렇게 싫으면 더 이상 찾아오지 않겠다!"

 

소년은 찾아오라고도,

찾아오지 마라고도 하지 않았지만

저는, 담당 판사님과 소년원 선생님에게

의료소년원으로 보내 치료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소년은 알코올중독과 우울증 환자이기에 선처를 구했는데

9호 처분을 받고 의료원이 아닌 지방 소년원으로 보내졌습니다.

 

오는 토요일(24)에 조부와 모시고

소년을 만나러 소년원에 가려고 합니다.

가서, 피해자 부모를 만나 사과하려고 합니다.

그나저나 합의금을 요구하면 어떻게 해야할 지 걱정입니다.

 

보호소년들이 저에게 주어진

십자가라면 지고 가야하겠지만

<어게인그룹홈>에서 지내는 한 소년은

어제, 소식도 없이 집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힘드네요.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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