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창/눈물시편

그해 겨울

침묵보다묵상 2011. 8. 4. 20:42

그해 겨울

 

 

 

처마 밑에 쪼그린 가난은 대낮 햇살에도 언 채로 발 동동 굴렀다. 황태처럼 마른 살림에 거미줄만 휑뎅그렁하고 오호츠크 해() 북동풍이 엄습하면 빈 밥그릇들은 울 힘조차도 없었다.

 

익사체처럼 불어나는 연체이자에 목숨 조이는 단수단전 통보서. 가난에 난자당한 아내는 끝내 가출하고 실직자 아비는 다섯 살배기 딸을 보육원에 맡기고 돌아와 불어터진 라면을 먹었다. 새벽 용역시장에서 공치고 돌아와 딸의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눈물 훔쳤다.

 

귀퉁이에 동그마니 앉은 다섯 살 아이는 "아빠 보고 싶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사코 고개 젓다가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그해 겨울이 지나 봄이 왔지만 어미는 깜깜무소식이고, 돈 벌면 딸을 데려가겠다는 아비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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