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창/눈물시편

무서운 희망

침묵보다묵상 2011. 8. 4. 20:41

무서운 희망

 

 

1.

 

워매 워매, 짠한 것

저 어린 것들을 버리다니

천벌 받은 짓이야, 천벌 받을.

지어미에게 버림 받은 아이들 짠하다고

천 원짜리 지전 두 어장 쥐어주고 갔는데

일곱 살 막내 놈이 지전 슬그머니 내밀면서

아부지, 아부지, 이 돈으로 빚 갚으세요!”

 

아들아, 살자 살아서 죽기 전에 빚 갚자.

 

2.

 

배고픈 것보다

집 없는 설움보다

더 무서운 빚에 쫓기는

홀아비와 두 아들이 손잡고

명도소송 걸린 12평 영구임대 아파트에

찬 없는 밥 먹으러 허기 참으며 걷는데

길가 와상에서 또래 아이들이 수박을 먹는다.

붉은 속살 베면서 과즙 줄줄 흘리며 먹는다.

큰 놈이 힐긋힐긋 뒤돌아보며 발 엉키면서 꿀꺽꿀꺽

빚쟁이 아비 듣지 말라고 작은 소리로 신음처럼 토하는데

나도 언젠가는 수박을 먹을 거야, 아부지도 사줄 테야!’

 

아들아, 눈물 갈고 갈아서 허기를 끊어버리자.

 

3.

 

문수주공 관리소장이 찾아와

한 달 기한 줄 테니 집 비우란다.

한 달 뒤엔 강제집행 할 테니 알아서 하란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쉴 집이 있는데

홀아비는 자식 둘 데리고 몸 피할 곳이 없다.

시퍼런 달이 문수저수지에 빠져 허우적댄다.

싼 월세방 나왔다고 해서 큰 놈 데리고 갔다.

허름한 집주인이 수사관처럼 묻더니

홀아비에겐 집 줄 수 없다고 한다.

밤길 벼랑길 헛디뎌 허청허청 걷는데

'그 집은 하나님 뜻이 아닌가 봐요. 울지 마세요!’

 

아들아, 네가 아비다. 그래 하늘이 세 목숨 버리랴.

 

 

 

*누가복음 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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