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방/여자일기

[스크랩] [그 여자의 재혼일기 18] 청송보호 감호소 출신 최 선생님

침묵보다묵상 2011. 8. 1. 17:36

 

정신없이 바쁜 오전, 느닷없이 최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최 선생님의 전화는 늘 부탁하는 내용이었기에 그리 반가운 전화는 아닙니다.

이런 속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한듯 “아무 일 없고, 그냥 보고 싶어서 전화한 거야. 오늘이 내가 청송보호감호소에서 나온 지 20년되는 날인데, 그동안 한번도 사고치지 않고 경찰서에도 간 적이 없거든.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이게 모두 최국장 덕분인 것 같아서 전화했어, 내가 가서 삼계탕 사 줄려고.”

 

최선생님은 전과11범에 청송보호감호소에서 11년을 살고 출소한 분입니다. 손가락도 모두 합쳐서 7개밖에 없으십니다.

남편보다 더 끔찍한 불우한 시절을 보내신 분이지요.

청송보호감호소에서 나오던 91년 11월 매우 추운 날이었습니다. 바로 그날 거리에서 쓰러진 사람을 보고 얼어 죽을 것같아 여관으로 데리고 가 뉘었는데, 바로 그 여관방에서 신장을 기증한 보도기사를 본 것입니다.

죄값을 치루고 싶어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20대 청년에게 자신의 신장 한쪽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팍팍한 삶이 나아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전과자에 대한 주위의 시선은 차가웠고, 30대에 접어든 아들조차 아버지가 부담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기술도 없고 나이든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어 대부분 배달로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자신의 삶 가운데 가장 밝은 한 부분은 신장기증, 그리고 운동본부였기에 아무리 어려워도 신장을 나눠준 청년을 찾지 않았고, 대신 좋은 일이나 슬픈 일, 외로울 때 본부를 찾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신장기증 시기부터 지금까지 20연년 동안 당신을 보아온 제가  마음 편한지 이런저런 아쉬운 말씀을 했고, 외로우면 전화로 투정하고 우시는 바람에 들어주고, 찾아오시면 밥 사드리고 함께 해주는 것 등을 제 몫이었습니다.

 

연세가 들어갈수록 최선생님의 부탁은 조금씩 더 늘어났습니다.

직장이 잃어 밥을 굶고 있다며 돈을 보내달라고도 했고, 일을 해야 하는데 주민등록이 말소 됐으니 복구하게 돈을 달라고 했고,

설에 들어가야 하는데 옷도 없고 돈도 없다고 해서 남편의 코드와 바지, 내의를 사드리는 것,

심지어 배달을 하려면 오토바이가 필요한데 중고 오토바이 살 돈도 얻어가셨습니다.

잦은 부탁에 좀 싫은 기색을 보일라치면, 전화기 너머로 어찌 그리 귀신같이 알아채는지, “당신이 나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내 주머니에 칼 들어있어. 나 죽어버릴 거야.” 생떼를 쓰기도 했습니다.

 

하루는 병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귀를 수술하는데, 만에 하나 잘못됐을 경우 연락처를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당신의  시신을 거두어줄 사람은 나 밖에 없을 것 같아 내 연락처를 적었다는 것입니다.

어디냐고 했더니, ‘올 필요는 없다’며 거듭 사양하더니 못이기는 척 국립의료원이라고 가르쳐주었습니다.

 

이른 새벽, 선생님이 좋아할 군것질을 사들고 출근하기 전에 남편과 함께 병원을 찾아 갔습니다.

언제 올까 생각했지만, 이렇게 일찍 올 줄 몰랐다면서, 이제 봤으니까 얼른 가라고 합니다. 병원에서 보면, 아무도 없다더니 귀찮게 할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최선생은 ‘나 죽으면 최국장 밖에 없어. 아들도 연락이 안돼. 그러니까 귀찮더라도 내 뒤치다꺼리를 해주어야 돼.’ 하며 다시 다짐을 받아두셨습니다.

 

병원을 나오면서 남편에게 저 분의 장례식은 내손으로 치루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행히 남편은 최선생님 같은 분을 많이 경험했기에 ‘그래야겠지.’ 선선히 수긍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또 최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먼저 전화를 해놓고는 대뜸 “나한테 할 말 없어요?” 합니다. 말투도 언제나 퉁명스럽습니다. “전화하신 분이 하실 말씀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예요? 삼계탕 사주러 오신다더니 오지도 않고...”. “아니, 일 끝나고 가는데 너무 외로운거야. 그래서 핸드폰을 보니까 최국장 전화번호가 있어서 전화한 거야.”

애고, 또 립서비스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상황을 모르니, 어떻게 대화를 이끌어가야 할지 늘 난감합니다.

“그러세요? 그럼 언제든 전화하세요. 일하는데 피곤하지 않으세요?” “아니, 뭐그런 말은 필요없고...”

늘 대화를 이끌어가기 쉽지 않은 분입니다.

“알았어요. 또 전화할께요.”

뚜~~~~~~~

전화할 때처럼 그렇게 문득 전화를 끊습니다.

 

이제 가끔은 내가 먼저 전화를 해드려야 할 모양입니다.

출처 : 그남자 그여자의 재혼일기
글쓴이 : 햇살 따스한 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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