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방/간증

[스크랩] 내 평생에 가는 길 " 이 얽힌 이야기

침묵보다묵상 2014. 4. 27. 22:31
 

 

호레이쇼 G. 스패포드((Horatio G. Spafford 1828.10.20, N.Y. - 1888.10.16, Jerusalem)

 

 

 

스패포드의 명함.

 

 

 

안나 스패포드(Anna Spafford 1842.3.16 – 1923.4.17)

노르웨이 이민가족의 딸로서 교회학교 출석할 때부터 14살 연상인

스패포드는 관심을 두었고 드디어 결혼하게 된다(1861.9.5).

 

 

 

 

 

천사같이 아름답고 이쁜 Annie, Maggie, Bessie, and Tanetta(윗열 왼족부터)

Anna 'Annie' (born 1862.6.11), Margaret Lee 'Maggie' (born 1864.5.31),

Elizabeth 'Bessie' (born 1868.6.19), and Tanetta (born 1871.7.24)

 

 

§  ※  ☆  ★  ○  ●  ◎  ◇  ◆  □  ■  ▲  ▽  ▼

 

우리가 알고 있는 찬송가 중에는 고통가운데 탄생한 것들이 많이 있다.

여기 소개하는 찬송 역시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슬픔가운데 탄생한 것이다.

 

다음은 원어를 직역한 가사이다.

 

It is well with my soul

When peace like a river attendeth my way,

When sorrows like sea billows roll;

Whatever my lot, Thou hast taught me to say,

"It is well, it is well with my soul."

It is well with my soul;

It is well, It is well with my soul.

 

평화가 강같이 내 길을 따를 때나

슬픔이 파도처럼 굽이칠 때

내 운명이 무엇이든 간에 주께서 평안하다

내 영혼이 평안하다 하고 가르쳐 주셨도다.

 

Though Satan should buffet, though trials should come,

Let this blest assurance control,

That Christ has regarded my helpless estate,

And hath shed His own blood for my soul,

It is well with my soul;

It is well, It is well with my soul.

 

비록 사단은 희롱하고 시련 닥쳐도

내 무력한 상태를 그리스도가 알고 계시며

주의 보혈이 내 영혼을 위해 흘렸다는

이 복된 확신이 주관케 하소서.

 

My sin O, the bliss of this glorious tho`t-

My sin not in part, but the whole,

Is nailed to the cross and bear it no more;

Praise the Lord, praise the Lord, O my soul,

It is well with my soul;

It is well, It is well with my soul.

내 죄가 하나도 남김없이 다 십자가에 못 박혀서

이제는 더 이상 담당할 것이 없다는 것

이 영광스런 생각의 기쁨.

, 내 영혼아! 주를 찬양하라.

(그러나, 우리말 찬송 가사는 3절에서

지은 죄를 낱낱이 다 아뢰어 용서를 받는 것처럼

원문과는 다르게 번역되어 있다.)

 

And, Lord, haste the day when the faith shall be sight,

The clouds be rolled back as a scroll,

The trump shall resound and the Lord shall descend,

"Even so" it is well with my soul,

It is well with my soul;

It is well, It is well with my soul.

 

주여 내 믿음을 보게 될 날을 서두르소서.

두루마리처럼 구름을 접으시고 나팔소리 울려 퍼질 때

주께서 강림하시리니 그렇다 해도 내 영혼은 편하도다.

 

<후렴>

내 영혼 평안해, 평안해

내 영혼은 평안해

 

나를 대적하는 자 많더니 나를 치는 전쟁에서

그가 내 생명을 구원하사 평안하게 하셨도다.

He ransoms me unharmed from the battle waged against me.

Psalm 55:18

 

미국 시카고에 아주 행복한 사람이 있었다.

이름은 스패포드(Horatio G. Spafford 1828~1888),

그는 유명한 변호사이며 린드 대학교수와 시카고 의과 대학의 법리학 교수,

신학교 이사 및 운영위원이며, 특히 그 유명한 무디 교회(Moody Church)의 재정 담당 장로였다.

43세의 변호사인 스패포드는 아름다운 아내와 5명의 아이들과 함께 시카고 근교에 살고 있었다.

1871년에 그의 외아들이 죽었고.

몇 달 후에 시카고에 큰 화재가 발생하여 그의 전 재산을 모두 잃어 버렸다.

 

 

시카고 대화재(Great Chicago Fire 1871.10.8-10.10)의 참담함.

 

이틀간에 건조하고 바람부는 날씨를 따라 화마는 시카고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우유짜던 암소가 등유 램프를 발로 차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설도 있고,

일꾼의 실수로 인한 화재라는 설도 있지만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당시 약 30만 정도의 주민 중 10만명 가량이 집을 잃었으며(homeless)

재산 피해가 약 2억 달러($200 million dollars; $3 billion in 2007 dollars)였다.

사망자만도는 약 3백명 정도로 추산되는 엄청난 사고...

 

 

도시의 재난 즉 환경에 의한 어려움은 개인에게도 찾아오는 법. 아름다운 집도 소실되었으며,

부동산에 많은 투자를 하였던 그는 큰 피해를 입었다.

물론 시카고 대화재는 기념비적인 무디 교회도 사라지게 하였다.

그 후 2년 뒤,

어쨌든 마음을 추스리는 것은 어렵고 힘들어도 해야 되는 법…….

마침 친구인 전도자 무디(D.L. Moody)와 복음성가 가수 생키(Ira Sankey)

1873년 영국 집회에 휴가 겸 집회참석을 결심한다.

카고의 많은 사람들을 돕기 위한 하나의 방편인 모금 집회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물론 아내의 건강회복을 위한 제일 중요 목적도 있었지만…….

아내의 건강을 위해 가족 모두가 유럽 여행을 가기로 계획했으나,

예기치 않은 일이 생겨 아내와 네 딸들이 먼저 배를 타고 출발했다.

187311월 어느 날, D. l. Moody 일행은 영국 에든버러에서 전도 집회를 하고 있었고,

같은 시각에 미국 필라델피아에서는 국제적인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회의가 끝나자 손님들은 각국으로 돌아가고자 S. S. Ville du Harve호에 승선했다.

이 일행 중에는 시카고의 변호사요, 실업가, 대학교수인 Spafford의 부인과 네 자녀도 끼여 있었다.

본래 Spafford도 같이 갈 예정이었으나, 그 무렵의 시카고 대 화재에 가산을 잃었기 때문에,

사업상 늦어져 우선 먼저 가족들만 가게 된 것이다.

 

 

기선이 뉴욕을 출발, 18731121일 새벽 2시경 영국 범선 Loch Earn호와 정면으로 충돌하여

2시간 사이에 226명을 실은 배는 가라앉았다.

아이들을 잃고 부인만 물에 떠 있을 때 기선의 선원이 보트로 구해 주었다.

9일 후 생존자들은 영국 Cardiff, Wales에 상륙하여 부인은 미국에 전보를 쳤다.

“Saved alone. What shall I do ……." 나 홀로 구조되었어요.…….

전보를 받은 Spafford는 이 메시지를 액자에 넣어 자기 사무실에 보관했다.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구조된 그녀는 47명의 생존자 중 한 명...

"God gave me four daughters. Now they have been taken from me.

Someday I will understand why."

그녀의 당시 고백... 아무도 모르는...

그리고 9일만에 영국 웨일즈 카디프(Cardiff, Wales)에 도착하여 전보를 보낸다.

"Saved alone. What shall I do ..." 나홀로 구조되었어요...

이 말을 보내면서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이런 황당무계(荒唐無稽)한 일이 세상에 또 있을까?

 

그가 자기의 사랑하는 친구에게 한 말내가 무엇을 잃어버렸을 때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어 기쁘다

이 간증에서 그가 자녀들보다 하나님을 더욱 사랑한 것을 알 수가 있다.

그의 인생에는 두 가지 큰 시련이 있었다.

시카고 대 화재 때 그의 재산을 잃었고 또, 물속에서 네 자녀를 잃었다.

아마 그는 그 때 야고보서 112~13절을 기억했을 것이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동년 12, 부인을 만나기 위하여 배를 타고 유럽으로 출발하여 그 장소를 지날 때,

선장이 그에게이 곳이 바로 그 일이 일어났던 곳입니다.”라고 알려 주었다.

아픔과 슬픔으로 밤새 부르짖으며 기도한다.

드디어 새벽 3시경 체험해보지 못한 평안이 그의 마음 깊숙이 밀려들고,

그는 마음의 평안을 종이에 기록한다.

그는, 그 날 밤잠을 이루지 못하였고,

대서양 한복판에서의 찢어지는 듯 한 마음의 고통 속에 하나님은 그에게 영감을 주셨다.

 

It is well. it is well with my soul.

잔잔한 강 수면과 같은 평화가 내 길을 동반할 때나 슬픔의 파도가 넘실거릴 때나

내 운명이 어찌하든지 당신은 나에게 이렇게 가르쳤나이다.

만족하나이다.

내 영혼과 함께 만족하나이다.”

그는 단숨에 5 절까지 계속 써내려갔다.

 

그가 부인을 만났을 때, 그녀는나는 내 아이들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단지 얼마동안 떨어져 있을 뿐이지요. 하고 말했다.

 

"God gave me four daughters. Now they have been taken from me.

Someday I will understand why."

 

MoodySanky는 에든버러에서 전도 집회를 하다가

자녀를 잃어버린 부모를 위로하려고 리버풀에 도착했다.

그들은 Spafford내 영혼은 만족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 대단히 기뻐했다.

 

 

 

교인들의 위로를 받자 "내게 어려운 고난이 닥쳐왔지만, 주님을 더 의지하게 되어 기쁩니다".

스패포드의 이 말은 슬픔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이럴 때일수록 주님을 더 의지한다는 말...

 

그 후 1876, MoodySanky가 시카고로 돌아갔을 때 Spafford가 그들을 대접하였다.

그 때 그들이 감사했던 것은, Spafford의 가족들이 유럽여행을 떠나기 얼마 전에,

시카고에서 가진무디 전도 집회에 참석하여 그의 자녀들이 다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 후 1876년에, MoodyBlissSpafford를 방문했을 때

Spafford는 자기의 시에 작곡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187611월 마지막 금요일에 시카고 Farewell홀에 천명 이상이나 모인 사역자들의 집회에서

작곡자 Bliss의 엄숙한 독창으로내 평생에 가는 길이 처음 소개되었다.

When peace Like a River Attendeth my Way

- H. G Spar\fford(1828~1888) -

 

When peace like a river attendeth my way.

When sorrows like sea billows roll;

What ever my lot, Thou hast taught me to say, 

It is well. it is well with my soul.

 

 

It is well with my soul;

It is well, It is well with my soul.

 

Tough Satan should buffet, though trials should come.

Let this blest assurance control,

That Christ has regarded my help lesses tate,

 

And has shed, His own blood for my soul.

 

It is well with my soul;

It is well, It is well with my soul.

 

My sin O the bliss of this glorious though!

My sin, not in part, but the whole,

Is nailed to the cross and I bear it no more;

Praise the Lord, praise the Lord, O my soul!

 

 

It is well with my soul;

It is well, It is well with my soul.

 

 

And, Lord, hast the day when the faith shall be sight,

The clouds be rolled back as a scroll,

The trump shall resound and the Lord shall descend,

"Even so"- it is well with my soul.

 

It is well with my soul;

It is well, It is well with my soul.

 

 

 

 

 

 

 

 

 

 

 

한 달이 지난 후 Bliss (Philip Paul Bliss 9 July 1838 – 29 December 1876)

부인은 두 아이들을 친지에게 맡기고,

집회에 참석하러 뉴욕 주 버펄로에서 시카고로 향하는 기차를 탔다.

18761229일 금요일 저녁 8시에 오하이오 아쉬타버러에 가까이 가던 기차가 횡단할 때,

철교가 무너져 내려 기관차와 7대의 객차들이 얼음이 언 강물 속으로 떨어졌다.

물속에 빠져 죽는 것을 모면한 사람들도 기차에 불이 나서 재목과

기타 침목들이 떨어지는 바람에 그 속에 갇혀 불에 타 죽었다.

160명 승객 가운데 59명의 시체를 찾았고, 14명이 생존, 그 외에는 시체조차 없었다.

그 참사에서 살아나온 사람이 증언하기를“Bliss는 불을 모면했지만

그의 부인이 불꽃 속에서 빠져 나올 수 없는 것을 보고

자기 부인 곁에 남아서 결국 맹렬한 불꽃 속에서 죽었습니다.”라고 했다.

그를 사랑하는 친구들이 3일 동안 재난의 현장에서 물품들을 긁어모았지만,

38세 난 찬송가 작곡가와 그의 부인의 시체는 없었다.

 

작사자의 자녀들이 대서양 한 복판에서 수장된 것이나,

작곡자 부부가 오하이오 주 어느 강에서 수장된 것이 약속이나 된 것처럼 일어났다.

그러나 연달아 일어나는 비극에 뒤따른 그들의 찬송은

그리스도인의 가슴 속에서 아직도 살아 움직이고 있다.

장차 주님이 천사장의 나팔소리 가운데 재림하실 때 까지

그들은 물속에서 그들이 부른 노래처럼 쉬고 있다.

이 찬송은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가운데서 주님을 바라본 사람들의 생생한 간증이다.

 

 

 

가족은 예루살렘으로 이주하여(1881년)

기독교 공동체(Christian utopian society)를 꿈꾸며 살았다.

미국식 정착촌(American Colony)으로 일컬어지는 그 곳에서

자신의 신앙 일념으로 이전의 모든 재난과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지냈다.

 

 

출처 : 행복한 사랑의 오솔길
글쓴이 : 딸기향기 원글보기
메모 : <내 평생에 가는 길>의 작사자와 작곡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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