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많은 피고인들과 사람들은 판사에게 쓰는 편지나 탄원서 서두에 '존경하는 재판장님!'이라고 쓴다. 그들은 정말로 재판장을 존경할까? 진심으로 존경받는 재판장은 10%가 안 될 것이다. 보호소년인 은아 또한 처음엔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은아는 배냇저고리를 건네 준 천종호 판사님에게 받아본 용서와 그 용서로 인해 진심어린 존경과 사랑을 느꼈을 것이다.
한국 법원에는 수많은 판사가 있다. 하지만 그 어떤 판사도 배냇저고리를 선선히 줄 수는 없을 것이다. 배냇저고리가 몇 푼이나 된다고! 비싸서가 아니다. 배냇저고리를 주기 위해선 간음한 여인을 변호한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야 한다.
보호소년도 간음한 여인도 죄인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돌로 쳐 죽이고, 처벌하면 끝나는 존재가 아니라 재생의 기회를 주어야 하는 하나님의 귀한 생명이다. 예수가 "죄가 없는 사람들은 저 여자를 돌로 치시오!"라고 말했을 때, 간음한 여인을 돌로 쳐 죽이려던 사람들이 한 마디 항변도 하지 못하고 돌아간 것처럼 우리는 보호소년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없다.
그렇다고, 보호소년의 죄를 그냥 묻어둘 순 없다. 재비행을 부추기는 것은 보호소년과 우리 모두에게 유익하지 않다. 예수가 간음한 여인에게 "다신 죄를 짓지 말라!"고 부탁하고, 위로했는데도 그 여인은 또 간음했을까?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그 여인은 참회하며 새 삶을 살았을 것이다. 나는 그 가능성에 나의 한 표를 던진다.
천종호 판사님은 예수의 그 마음으로 은아에게 배냇저고리를 주셨을 것이다. 다시는 비행을 하지 말고, 아이를 잘 키우면 좋겠다! 이런 긍휼한 마음으로 배냇저고리를 주셨을 것이다.
은아는 천 판사님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 기억은 은아의 삶에서 동아줄이 되어줄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성매매 한 년, 애비도 없는 년, 막돼먹은 년이라고 욕하며 비난할 때! 자기를 이해해주고, 위로해준 천 판사님으로 인해 세상에 대한 분노와 싸움을 더디 할 것이다.
천 판사님이 소녀에게 준 것은 배냇저고리지만 그 소녀에겐 희망이고, 용서고, 화해의 선물일 것이다. 그래서 피고인도 관계인도 아니지만 나는 '존경하는 천종호 판사님!'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래서 더욱 천 판사님의 이야기가 세상에 더 알려져서 유명해지더라도 그리스도인의 선한 그 마음 그대로 사셨으면 좋겠다.
천 판사님이 앞서서 만든 <사법형그룹홈> 곧, <청소년회복센터>를 서울과 경기도에서 처음으로 시작하기 위해 준비하면서, 천 판사님의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를 읽으면서, SBS의 <학교의 눈물>등의 동영상을 보면서 예수쟁이의 힘을 본다.
세상의 판사들은 오늘도 수많은 판결들을 쏟아내기 위해 바쁘지만 생명을 살리고, 병든 영혼을 구하며, 보호소년 정책의 대안을 제시하며 바른 방향을 이끌어내지는 못한다. 예수님 때나 지금이나 대다수 법관들은 높은 자리에 있을 뿐, 낮은 이들의 눈물들을 닦아주는 일에는 관심이 매우 적다. 그런데 천 판사님은 보호소년들과 그 부모들의 피눈물을 닦아주느라 바쁘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 틀림없다.
'어게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실패했던 사람들의 역전승 (0) | 2014.01.20 |
---|---|
보호소년들이 원하는 것은? (0) | 2014.01.16 |
한국의 기부 현실 5가지 (0) | 2014.01.15 |
감사의 샘 (0) | 2014.01.11 |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0) | 2014.0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