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상담

소년 치유에 대하여

침묵보다묵상 2015. 6. 21. 12:41

소년 치유에 대하여

 

소년을 치유하는 능력을 보이고 싶었다.

하지만 능력은커녕 실패와 상심과 커졌다.

소년들을 고칠 수 없다는 것을 부끄럽지만 인정했다.

 

이때부터 달라져야 한다. 달라지기 시작해야 한다.

소년을 고치려는 행동 대신 그 아이를 보살펴야 한다.

소년들은 자신을 잘돌봐주거나 치유해주기는커녕 잔소리로

가르치고, 억압하고, 고치려했던 꼰대의 모습에 실망하게 된다.

그러면 소년을 붙들고 솔직하게 고백해야 한다.

 

"미안하다. 내가 너를 돕겠다고 했는데 잘 안 된다.

너를 고쳐보겠다고 했는데 교만한 생각이었다. 너를 고칠 수 있는

유일한 치유자는 주님이다. 주님에 오시면 너의 병을 낫게될 것이다.

절망과 분노의 세상으로 돌아가지 말고 우리와 함께 주님을 기다리자."

 

그러면, 소년이 아픈 이야기를 들려줄 지도 모른다.

자신도 제대로 살아보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모든 것이

허사였다는 절망의 이야기를 할 지도 모른다. 그러면 귀 기울이자.

세상 사람들의 낙인의 손가락질에 찍혔던 소외당한 이야기, 외로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자.

 

버림받은 고통에 시달리는 소년에게 "그렇게 살면 안 된다. 앞으로는 이렇게 살아라!"고

명령하고 호통쳤던 부끄러움을 뉘우치고, 소년 곁에서 그냥 손을 잡아주자. 명령과 호통이

소년을 얼마나 분노하게 만들었는지 되돌아보고 회개하자. 그냥 소년과 이야기를 나누고 놀자.

 

"소년아, 많이 힘들었지. 조금만 기다리면 예수님이 너를 고쳐주실 거야. 너를 축복해주실 거야."

 

그러면 예수님이 오셔서 소년을 고쳐주신다.

소년은 기뻐하고 감격할 것이다. 그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주님이 오실 때까지 소년과 함께 있어주는 것이다.

우리의 능력은 소년의 병을 고쳐주는 것보다 고쳐지지 않는 아픔 때문에

고통스러워 하고, 슬퍼하는 소년과 함께 있어주는 것이 능력이다. 그러면

소년은 주님이 오실 때까지 참고 견딜 수 있을 것이다.

 

크리스천 시인이 있어야 할 곳은 절망하는 소년들의 곁이다.

분노와 좌절로 시도 때도 없이 발작하는 소년들의 곁이다.

바로 그 곳이 주님의 교회다. 교회는 병으로 고생하는 소년,

소년 때문에 아파하는 부모와 함께 주님을 기다리는 곳이다.

주님은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로 오실 것이다.

주님이 오시면 소년은 치유받고 기뻐하고, 부모도 즐거워하고

크리스천 시인은 춤을 추면서 기뻐하겔 것이다.

 

시인은 상처 입은 영혼들과 함께 기도하고, 말씀을 나누면서

이야기하고 음식을 먹으면서 주님이 오시기를 기다리는 사람이다.

시인은 상처 입은 영혼들과 함께 슬픔과 아픔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주님이 오시기를 기다리는 사람이다.

상처 입은 영혼들은 시인이 있기에 힘들지만 아픔을 견디면서 주님을 기다릴 수 있다.

예수님은 우리가 기다리는 그곳으로 오셔서 상처 입은 영혼들을 돌봐 주시고 치유해 주실 것이다.

 

*손운산 교수님의 <따뜻한 경험 흐믓한 이야기>를 토대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