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에 전과 30범에 대해
http://media.daum.net/society/affair/newsview?newsid=20150214164203696
19세 전과 30범에 대해
사회공동체도
가정공동체도 파괴된
내 자식의 승승장구를 위해선
남의 자식은 깔려주기를 바라는
내 자식주의에 비열한 이 풍토에선
내 가정과 내 새끼만
잘 먹고 잘 산다면 이웃의 불행은
있던지 말던지 관심조차 없는 이 나라에선
19세에 전과 30범의
소년범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임군 같은 소년범은 너무 많습니다.
뉴스로 실렸으니 관심받을 뿐입니다.
버림 받은 소년들의 비극을
강 건너 불구경처럼 즐기지 마십시오.
낙인 찍고 격리시키면 해결될 것 같습니까.
버림 받은 아이들의 분노가 어느 날, 그 어느 날
불길처럼 덮칠 수도 있습니다. 남의 불행이 나의 불행으로 닥칠 수 있습니다.
정부당국과 정치권이 학교폭력과
비행청소년에 대해 백 가지 대책을 세우고
선도와 보호와 무슨 무슨 쇼를 벌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곪아터진 고름은 그대로 두고 반창고 붙이는 격입니다.
이 사회가 폭력적인데
강자의 폭력이 교활하고 뻔뻔한데
즉, 정치권과 권력기관과 힘센 자들의
폭력이 난무하는데도 법은 오히려 감싸고
사회적 약자의 분노와 폭력은 일벌백계하는
보이지 않는 삼청교육대가 살아 있는 승자독식의
폭력적인 위계질서로 다스려지는 이 사회에서 소년들이
폭력적인 것은 당연합니다, 윗물이 더러운데 아랫물이 맑을 수 있습니까.
소년범들의 비행을 심판하기 전에
승자독식의 폭력부터 심판해야 합니다.
소년범들의 죄를 묻고 격리하기 전에
힘센 자들의 폭력부터 격리시켜야 합니다.
학교 폭력을 진정으로 해결하고 싶습니까.
청소년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고 싶습니까.
소년범들의 비행을 해결할 의지가 있습니까.
무슨 대책, 무슨 정책으로 쇼하지 말고
아이들에게 죄를 뒤집어 씌운 것부터 사죄하십시오.
소년범들의 비극과
소년범들의 슬픔에 대해
슬퍼하십시오. 제발 슬퍼하십시오.
그 아이들의 아픔에 대해
제발 아파하십시오. 가슴 아파하십시오.
그것이 최소한의 인간 도리입니다.
그래야만 소년도 살고 우리도 삽니다.
그런 도리부터 다한, 인간의 자세가 아니고선
비인간화와 승자독식과 폭력적인 자세로는 어떤 대책도
위선이고 쇼쇼쇼이며, 대책이란 이름의 또 다른 폭력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