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服하는 인간"
2012/06/04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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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빈농의 유복자로 태어나고 신학대를 중태하고 난후 200여 권의 문학.인문서를 번역하며 동인문학상을 타고 [이윤기의 그리스.로마 신화]로 우둑 선 이윤기의 삶의 일단으로 잠시 살펴보고자 한다.
"그는 전사였다. 어깨는 강인하고 늑골은 당긴 활처럼 팽팽했다. 2년 전 여름 그가 저세상으로 갔을 때 티베트의 풍장(風葬)처럼 홀연한 적멸에 아득해졌다. 정신 놓기 직전까지 앰뷸런스 타기를 거부했단다. 스스로 제 명(命)을 컨트롤하며, 병원살이 없이 갈 길로 갔다. 그의 분신인 아내가 말했다. “살고픈 대로 살았어. 후회 없는 인생이었어.” 번역가 겸 소설가·인문학자. 예순 넷에 세상을 던진 사내, 이윤기다.
이런 그는 실은 ‘자복(自服)하는 인간’이었다. 말과 글로 종종 제 뱃속까지 헤집어 보였다. 어린 시절의 치기 어린 오만, 많이 갖고 가방 끈 긴 자들에 대한 복잡한 심경, 살면서 저지른 실수와 과오. 자기만 입 다물면 될 걸 그는 왜 자꾸 ‘얼굴에 모닥불 붓는 심정’으로 고백하고, 내처 ‘이런 나를 부디 용서 말라’며 손 탁 놔 버리곤 했던 걸까.
그에게 따져 물은 적 있다. “위선인가, 위악인가. ‘나 이런 사람이니 믿어달라’, 이건 위선이고 ‘나 원래 이런 놈이니 건드리지 말라’, 이건 위악이고.” 답은 이랬다. “둘 다 아니야. 외려 위선도 위악도 떨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지. 사람이 자복할 줄 모르면 결국 힘이 달리게 돼. 세상 다 아는 것처럼 떠들다 어느 순간 치명적 실수를 저지르지. 첨부터 아예 못박는 게 나아. 난 잘 모른다, 아직 배우는 사람일 뿐이라고.”
그러니까 자복은 그 대단한 이윤기가 험난한 세상을 헤처오며 익힌 생존의 기기 중의 하나였고, 주류 사회의 검증욕을 그는 쿨한 고백으로 머쓱하게 만들어 보리곤 했단다.
이 글은 2012년 6월 4일자 중앙일보 '분수대'에서 이나리 논설위원의 기사중에 반토막 정도만 떼어온 글이다. 이렇게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제목도 발췌한 부분에 맞게 임의로 바꿨다. "인간들이여.. 자신의 굴곡짐을 고백하면 자유를 얻으리라"라는 기자의 결론에 동감하며 이 공간도 그런 블러그이고 싶다. 어느 때가 되면 이 공간도 불살라 흔적을 없애버리겠지만서도.
自服 :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논할 수 없는 죄에 있어서 피해자에게 자기의 범죄사실을 고지하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