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체스코는 왜 절대 빈곤 가운데 살라고 역설했나
프란체스코는 왜 절대 빈곤 가운데 살라고 역설했나
By ydkorea
프란체스코는 본래 옷감 장사의 아들이었으나, 회심한 뒤로는 누덕누덕 기운 초라한 외투를 입고 살았다. 부친이 아시시의 주교에게 자신의 미친 아들이 집안 재산을 남에게 나눠주지 못하게 막아달라고 간청하자, 프란체스코는 주교 앞에 서서 옷을 모두 벗어던지고는 자기에게 아버지는 없고 하나님만 계시다고 선언했다.
당시 경제적인 부흥기를 맞았던 북부 이탈리아에서, 프란체스코는 동전 하나를 받은 어떤 프란체스코 수사에게 그것을 입술로 물고 똥 더미에 찔러 넣으라고 했다. 프란체스코와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에서 중요한 사건들은 가난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그는 그리스도와 제자들이 보여준 가난의 모델에 반했으며, 자신의 추종자들에게도 절대 가난 가운데 살라고 요구했다. 왜 그랬을까?
가난한 예수
프란체스코는 고도의 가난의 신학을 정립한 조직신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가난을 거저 말로 표현하기보다 그 진리를 몸으로 살아내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그의 '훈계'(Admonitions,수사들에게 내린 지침 모음집)와 '초기 규율'(Earlier Rules)과 '후기 규율'(Later Rules,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지침서들)은 그가 품었던 "예수의 가난의 복음"을 보여 주고 있다.
프란체스코에게 복음서는 예수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프란체스코가 알았던 예수는 겸손한 분이었다.
"너희는 왜 그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아들을 믿지 못하는가? 보라, 날마다 그분은 보좌에서 동정녀의 태로 내려오셨을 때처럼 자기를 낮추고 계신다. 날마다 그분은 겸손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고 계신다. 날마다 그분은 아버지의 품에서 사제의 손에 있는 제단 위로 내려오고 계신다"(훈계1:15-18).
예수는 스스로 높은 신분과 영광을 벗어버리고 겸손하고 가난한 모습으로 오신 분이다. 프란체스코는 예수가 가난한 전도자로서 (성찬에서)빵 한 조각을 통해 겸손히 오시는 모습을 보았다. 신분과 영광은 부를 동반했고, 높고 막강한 자들은 늘 부유했다. 그러나 십자가에 죽은 예수는 비천했고, 약했으며, 그래서 가난했다.
그런즉 세상의 길에서 돌이켜 자신의 "발자취"를 좇아 영생의 길을 걷도록 예수께서 부르신 사람들은 지위와 권력의 자랑을 버리고 그분과 같이 겸손해져야 했다. 이는 무엇보다도 소유물로 버리는 것을 뜻했다. 프란체스코가 아시시의 주교 앞에 서서 부친의 옷을 모두 벗어버렸던 행동은 타고난 집안의 삶을 송두리째 버린다는 상징, 하나님과 관계없는 소득과 소비의 생활을 모두 포기 한다는 상징이었다.
의지의 양도
타락한 이래 인간들은 자기만의 소유권을 주장해왔다. 프란체스코는 특히 모든 형태의 '전용'(appropriation -하나님의 것을 자기 것으로 가로채는 행위)에 대해 매우 가혹했다.
"주님은 아담에게 말씀하시기를,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어도 좋으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고 하셨다. 그는 죄를 짓지 않았으므로, 순종의 길을 벗어나지 않는 한, 낙원의 모든 실과를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선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는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의지를 전용하여 주님이 자기 안에서 말씀하고 행하시는 좋은 것들 위에 자기를 추켜세우고... 따라서 자기가 먹는 것이 그에게는 악을 알게 하는 과실이 되는 것이다.(훈계II:14,강조체는 필자가 추가한 것임)"
당신의 생각과 행위를 자랑하는 일, 그런 것을 형제자매들에게 강요하는 일, 재산을 소유하는 것은 모두 전용의 행위에 해당한다. 이런 행위는 하나님과 이웃보다 자기를 앞세운다. 이런 행위는 예수께서 행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하나님만을 주님으로 모시는 현실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 현실을 하나님께서 최후의 심판대에서 우리에게 강요하실 것이라고 프란체스코는 언제나 청중에게 상기시켰다. 그런즉 회개하라는 예수의 부르심은 전용 행위에서 돌이켜 가난으로 향하라는 부름이었다.
"주님은 복음서에서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또 '자기 목숨을 구하려고 하는 자는 잃을 것이다'라고 말씀 하신다(눅14:33,9:24;훈계III:1)"
행동
프란체스코와 함께 하기로 결심한 자는 누구나 모든 소유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 가장 가난한 자로 살아야 했다.
프란체스코는, 진심으로 예수를 좇아 가난의 길을 걷고자 하나 합법적으로 그렇게 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주교들은 자기 지위에 따른 소득과 특권을 포기할 권리가 없었고, 결혼한 사람은 가정을 버리고 배우자의 허락 없이 청빈과 금욕을 서원할 수 없었다.
그런 사람의 경우는 그렇게 하려는 영적인 소원만 있어도 충분하다고 프란체스코는 말했다. 그는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세 번째 규칙"을 지지했는데, 내용인즉 자신의 직업을 자유로이 버릴 수 없는 자들은 거기에 그대로 머물면서, 검소한 삶과 예수의 대한 헌신의 규율을 좇을 수 있도록 허락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평생 가능하기만 하면 언제나 문자적인 가난을 고집했다. 삶을 바꾸는 구체적인 행동이 느낌이나 추상적인 원리보다 프란체스코의 가슴에 더 와 닿았다.
"주님이 자기에게 보여주는 선한 것들을 가슴에 간직하지 않는 자, 그런 것들을 자기 행동으로 남에게 보여 주지 않고 말로 알려 주려고 하는 종교인[수사]은 화가 있을지로다. 이로써 그는 자기의 상을 받은 셈이고, 그의 말을 듣는 자들은 작은 열매만 가져갈 뿐이다"(훈계XXI:23)
가난을 기뻐하는 삶
예수의 가난을 좇으면 당연히 고난이 따르는데, 프란체스코는 그것을 '자발적인 고행'으로 받아들였다. 그의 말년은 어둠과 고통으로 가득 차 있었고, 십자가의 성흔(손과 발과 옆구리에 입은 상처)을 받는데서 절정에 도달했다. 그런데 그 기간은 또한 축복과 기쁨도 가져다 주었다.
"마음이 순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참으로 마음이 순결한 자는 이 땅의 것을 멸시하고 하늘의 것을 구하는 자요, 순결한 마음과 영혼으로 살아계시고 참되신 주 하나님을 쉬지 않고 경배하고 바라보는 자다"(훈계XVI:12).
참으로 가난한 자, 그래서 스스로 명예나 영광을 전용하지 않는 자는 자유로이 하나님께 영예와 영광을 드릴 수 있는 자뿐이다. '태양 형제의 찬가'가 분명히 보여 주듯이, 프란체스코의 하나님 찬양은 가장 어두운 날까지 포함해서 언제나 화산처럼 분출했다. 거룩한 청빈의 자유에 이르는 벅찬 권면들을 담고 있는 [초기규율]은 다음과 같은 황홀한 찬송으로 끝나고 있다.
우리 모두
어디에 있든지
모든 곳에서
매 시간
하루의 순간순간마다
날마다, 또 계속해서
진심으로 겸손히 믿고
[우리]마음에 간직하며
사랑하고 존귀하게 여기고 경배하고 섬기며
찬송하고 송축하며
영광을 돌리고 높이며
찬미하고 감사를 드리세
지극히 높이 계신 영원하신 하나님을
삼위일체 되시고 하나가 되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만유의 창조자요
그분을 믿고 소망하고 사랑하는
모두를 구원하시는 그 분을
처음도 없고 끝도 없는 분
변치 않고 보이지 않는 분
이루 묘사할 수 없고 이루 말할 수 없는 분
숭축하고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
저 높은 곳, 지극히 높은 곳에 계시는 영화로우신 분
온유하고 사랑스러운 분
유쾌하고 매력이 넘치는 분
모든 것 위에 계시는 그 분을
영원히
아멘
홍병룡 옮김
Christian History & Biography
-윌리엄 스태포드(Wiliam S. Stafford) 박사는 이 글을 쓸 당시 버지니아 주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버지니아 신학교의 교회사 교수였다. 저서로는 '성직자의 변화 과정:1522-1524년 스트라스부르에서 일어난 종교개혁의 발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