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방/남자일기

[그 남자의 재혼일기 25] 결혼 5주년의 행복 '난 좋아!'

침묵보다묵상 2011. 8. 27. 13:45

 

 

아내와 나 그리고 두 아들과 딸!

다섯 가족이 모처럼 식탁에 둘러앉았다.

한 식구가 모이니 자리가 꽉 찼다. 참 기쁜 일이고 감사한 일이다.

 

아내는 이번 여름에 아프리카와 몽골로 단기사역을 다녀오는 일로 집을 비웠다. 그러므로 나는 외로운 늑대로 지내야했다. 공군 병장으로 제대 말년인 큰아들은 군 생활로 가족과 떨어져 지냈고, 수험생인 막내아들은 DLS 생활로 1년 넘도록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다. 그리고 신학생인 딸은 여름성경학교와 여름캠프 등의 일정으로 집을 자주 비웠고, 오갈 데 없는 만학도인 나는 가정을 꿋꿋하게 지켰다.

 

나는 일취월장하는 살림꾼!

 

 

 

마음의 중심에는 하나님!

가정의 중심에는 주부님!

 

나는 우리 가정의 중심인 주부다. 나의 살림 솜씨는 일취월장하고 있다. 인덕원으로 이사하면서 나의 손길은 살림에 더욱 꼼꼼하게 미쳤다. 지루한 장마가 여름을 지워버린 올해, 나는 가정을 지키면서 살림살이의 위대함을 확인했다. 장마 통에 집안 곳곳은 습기가 장악했고 장롱을 빼곡하게 채운 가을 겨울옷들은 눅눅함과 고약한 냄새를 풍겼다. 이를 죄다 꺼내 베다란 빨래 건조대에 걸고, 옷장과 이불장에는 습기제거제와 탈취제를 설치하는 등 부지런을 떨었다.

 

나는 올 여름 살림살이에서 지대한 공을 세웠다. 미대 출신인 아내는 형편 좋은 시절에 그림 여러 점을 구입했는데 그림 걸 때가 없어 창고에 보관했다. 장마의 습격에 무방비로 당한 곳이 한 두 군덴가! 우리 집 창고도 여지없이 기습당했다. 눈치 빠른 아내는 창고에서 무슨 물이 흘러?”라고 지적했지만 그뿐, 눈치 느린 나는 창고를 기습 점검했다. 물이 스며들면서 곰팡이가 생기는 등 난리였다. 아내가 여행에서 사온 각종 목각 인형과 그림들, 가죽가방 등이 곰팡이에 잠식당한 상태였다.

 

나는 즉각 그림과 목각 인형들을 창고에서 적절한 장소로 이동시켰다. 만약 그림들이 그 상태로 방치됐다면 곰팡이가 슬고, 그 곰팡이가 그림들을 크게 훼손하고, 그림의 가치는 상실되고, 아내는 상심했을 것이다. 그런데 살림꾼인 내가 그림들을 구해 낸 것이다. 습기로 인한 꿉꿉함! 땀이 장마 오듯 쏟아졌다. 나는 웃통을 벗고 가죽가방과 목각 인형에 달라붙은 곰팡이들을 물에 담근 채로 씻어냈다.

 

살림의 길은 멀고 험했다. 살림꾼이 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정진의 세월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가죽가방은 물로 씻는 게 아니라는 것! 하지만 오직 청결함을 살림의 목적으로 삼은 나는 그 곰팡이를 척결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가죽가방을 물에 담근 채 수세미로 빡빡 문질렀다. 속이 후련할 정도로 깨끗해 졌다. 귀가한 아내에게 칭찬 들을 요량으로 오늘의 전과를 장황하게 설명했다. 그림을 구해낸 것에 대해 칭찬하던 아내는 가죽가방 건에 대해서는 태도가 돌변했다.

 

세상에나 세상에! 명품 가죽 가방을 물로 빠는 사람이 어딨어?”

아빠, 가죽에 곰팡이가 생기면 털어내야지 빨면 안 돼요. 그것도 몰라요. 아빠!”

 

이날의 지대한 공적은 가죽가방 세척사건으로 인해 인정받지 못했다. 공방 제품인 아내의 명품 가죽가방이 훼손된 것보다 공적이 훼손되면서 입은 마음의 상처가 더 아팠다. 괘씸했던 것은 큰아들 놈이었다. 때리면 시어미보다 말리는 척 하면서 때리는 시누이가 더 미운 법! 집안 세력 판도를 이미 파악한 큰아들은 엄마의 오른팔이 되면서 아빠와의 오랜 우정을 팽개친 것이다. 약자의 설움이다. 그러면 아예 엄마에게 다해달라든가 하지 필요할 때가 되면 아쉬운 소리를 이렇게 해댄다.

 

아빠, 미역줄기가 먹고 싶어요!”

아빠, 고구마줄기가 먹고 싶어요!”

아빠, 단호박 좀 해주세요, 두부 요리 좀 해주세요!”

그래 바로 이 맛이야! 역시 우리 아빠 음식 솜씨는 정말 최고야!”

 

큰아들이 작사 작곡한 결혼5주년 축하곡 난 좋아!’

 

 

 

지난 820일 저녁 식탁도 나의 손길에 의해 이루어지면서 가족들의 즐거움이 더해졌다. 이날은 군 제대한 큰아들의 가정복귀와 우리 부부의 결혼5주년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농수산물 시장에서 가을 전어와 꽃게 등을 푸짐하게 사고 깻잎과 양배추를 비롯해 야채를 샀다. 아내는 방송출연 때문에 가정을 비웠고, 나는 부지런히 저녁 식탁을 차리랴 빨래 감을 처리하랴 분주했다.

 

이날의 빨래 양은 거짓말 쫌 보태면 태산만 했다. 몽골을 다녀온 아내의 빨래, 기숙사에서 온 막내아들의 빨래, 캠프에서 온 딸의 빨래, 군대에서 가져온 예비군복 등 큰아들의 빨래 그리고, 모아 두었던 집안 빨래 등! 살림에 대한 나의 철칙은 밀려두지 말자는 것. 빨래든 설거지든 청소든 밀려두면 집안이 어수선할 뿐 아니라 정신이 사나워지는 법. 그래서 즉각 즉각 처리하는 게 나의 살림방식이다. 그래서 막내아들의 23일 캠프에 다녀오느라 피곤했지만 가족의 행복과 가정의 청결을 위해 불굴의 가정 투사 정신을 발휘했다.

 

주부는 가정의 안정기지다. 집을 떠났던 식구들이 복귀할 때 외로움과 낯설음을 느끼지 않도록 훈훈함을 지피는 파수꾼이다. 결혼 5주년을 맞는 우리 가정의 풍속도는 이렇다. 아내는 세대주가 되어 가정경제를 책임지고, 나는 살림꾼으로서 안정 기지를 살피는 파수꾼이다. 아내와 남편의 순조로운 역할과 권력 교체에 대해 우리 부부는 불만이 없다. 아내는 결혼 전에 아내 같은 남편을 원했으므로 내가 싸주는 도시락을 자랑스러워한다. 그 배경에는 나의 반찬 솜씨가 외부에서도 인정되기 때문이다.

 

가족 모임에 특별 게스트로 장모님을 모셨다. 인덕원으로 이사 오길 가장 바란 이는 장모님이시다. 자식을 가까이 두고 싶은 게 부모마음, 장모님은 큰딸인 아내가 인덕원으로 이사오자 "품안에 들어온 것 같다"며 좋아하셨다. 공군 병장으로 제대한 큰아들이 할머니께 절을 올렸다. 특별히 절을 올린 이유는 할머니를 당분간 찾아뵙지 못하기 때문이다. 큰아들은 추석을 가족과 함께 보낸 뒤 어학연수 겸 선교 차 아프리카로 떠난다. 장모님은 식사 후에 진행된 가정예배와 결혼5주년 세라머니의 즐거움도 함께 나누었다. 처제가 특별 주문한 결혼5주년 케이크는 오늘의 자리를 특별하게 빛내주었다. 우리 결혼을 반대했던 장모님도 이젠 우리 가정의 행복을 지켜보며 기뻐하신다.

 

결혼 5주년의 피날레는 우리 가정의 귀염둥이인 큰아들이 장식했다. 군부대 교회에서 성가 지휘와 드럼연주를 하면서 하모니카와 기타를 배우는 등 음악을 통한 은혜 나누기에 기쁨을 쏟고 있는 큰아들이 결혼 5주년 축하노래를 작곡해 온 것이다. 큰아들의 노래솜씨는 빼어난 편이다. 아빠의 첫 시집 출판기념회에서 부른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를 듣고 나는 놀랐다. 나의 목소리와 너무나 닮지 않은 고운 미성과 그 맑은 노래!

 

형으로부터 악보를 받은 작은아들이 기타 연주를 하고, 딸과 큰아들이 합창하면서 노래를 부른다. 눈이 맑고 웃음이 많은 큰아들이 싱글벙글 노래를 부르고, 동영상 촬영을 의식한 딸은 나의 촬영을 이리저리 피하면서도 웃음보를 터트린다. 장모님은 행복한 가정의 공연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아내는 축하곡 가사가 재밌어서 그리고, 너무 기뻐서 연신 웃음을 흩뿌린다. 아들이 엄마아빠의 결혼5주년을 위해 작사 작곡한 난 좋아의 가사는 이렇다.

 

두 번째 결혼이지만 남들이 수군대지만 난 좋아 난 좋아

능력 좋은 나의 아내와 이쁜 나의 공주님 있어 난 좋아 난 좋아

다시 누군가를 사랑할 때 솔직히 두렵기도 했지만 난 좋아 난 좋아

빨래 청소 요리 잘하는 남편 잘 생긴 나의 왕자님들 있어 난 좋아 난 좋아

개그치다 현진이한테 혼나는 아빠 그때도 아빠 편드는 엄마

만날 엄마 손 놓지 않는 아빠 그 손 꼭 잡고 가는 엄마

처음에는 서로서로 너무 달라 같이 지내는 게 불편했죠

5년 지난 우리 가족 이제는 서로 없으면 너무 보고 싶어

기도 제목 나눌 사람 있어서 서로 서롤 위해 기도해줘서 난 좋아 난 좋아

예산 초과해서 장봐오는 아빠 김치요리만 잘하는 울엄마 난 좋아 난 좋아

개그치다 현진이한테 혼나는 아빠 그때도 아빠 편드는 엄마

만날 엄마 손 놓지 않는 아빠 그 손 꼭 잡고 가는 엄마

처음에는 서로서로 너무 달라 같이 지내는 게 불편했죠

5년 지난 우리 가족 이제는 서로 없으면 너무 보고 싶어

야식 사달라고 조르는 솔이 만날 여자 고민만 하는 승이

그 고민 듣느라 고생하는 현진 난 좋아

5년 동안 사랑한 엄마아빠 앞으로 50년 더 사랑해요 난 좋아 난 좋아

 

추신 가족이란?

 

나의 꿈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행복한 가정을 섬기는 사역자다.

나는 아내의 발을 씻어주고 만져주는 행복한 사내로 계속 살 것이다.

나는 아들과 딸들의 행복을 비는 기도의 아버지로 계속 손을 모을 것이다.

나는 우리 가정을 통해 깨진 것들의 회복과 온전함을 계획하신 주님께 순종할 것이다.

 

동갑인 큰아들과 딸은 친구처럼 지내는데, 큰아들 핸드폰에는 여동생으로 입력되어 있다.

친화력이 뛰어난 큰아들과 딸은 다른 남매 못지 안헤 아주 잘 통하는데 요즘에는 둘이서 헬스클럽을 다닌다.

같은 나이여서, 이성이어서, 한 핏줄이 아니어서 갈등과 불화의 관계로 번질 수도 있는데 서로를 이해하며 더 품어주려는 그 귀한 살핌이 참 감사하다.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딸이 큰아들에게 페이스 북으로 보낸 글을 남긴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우리 가족 서로 너무 다른 인생을 살다 만났고

같이 살면서도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많아 잘 몰랐지만

어제 한 가족이 다 모여 밥을 먹고 찬양하고 티비 보는데 너무 기분 좋드라.

똑같이 혼자 방에서 잠들지만 기분이 너무 다르드라. 가족이란 게 있어서 좋은 거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