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창/눈물시편
비오는 날 소주 마시다
침묵보다묵상
2011. 8. 10. 16:21
비오는 날 소주 마시다
칼질에도 세월이 베여서
쉰 줄의 여자는 날랜 솜씨로 개불 썰고
머리 희끗희끗한 그의 남자는
포장 밖 기웃거리며 손님 기다린다.
그림자의 움직임도 없이
조용히 취해가던 두 사내가
해삼 한 접시를 더 주문한다.
운치 있게 망했는지 망해서 운치가 있는지
덥수룩하게 수염 기른 후배가
은행 빚을 걱정하며
선배의 빈 잔을 채웠다.
술잔을 비우던 후배는
보증 서준 장인에게 면목없다하고
선배는 후배에게 면목이 없었다.
털보 후배가 해삼을 씹으며
-아줌마, 하루에 매상이 얼마나 올라요?
하고 묻자 무료하던 참의 그의 남자가
-시원찮습니다, 경기가 예전 같지 않아요.
라며 몇 마디 응답을 마칠 무렵
후두둑 후두둑 빗방울이 포장을 때리고
젊은 남녀들이 포장을 들추고 들어와
경쾌한 목소리로 이것저것을 시키자
포장마차 여자는 낙지 볶고 생선을 굽는다.
근방의 나이트클럽이 파했을 것이다.
쌀값으로 술값을 지불한 선배
손 흔들며 겨울비 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