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창/노동시편

가투(街鬪)의 추억

침묵보다묵상 2011. 8. 4. 20:32

가투(街鬪)의 추억

 

서노협 해골 형이 동()으로 뜨는 게 어떻겠냐며 동의를 구했고 투계(鬪鷄)를 자처했던 나는 비겁하고 싶지 않았으므로 비장의 검을 품었지. 사나이로 태어나 그런 날이 있었을까? 노동해방의 대의를 품었지만 고작 방 비우라는 집주인의 성화에 시달리면서 대의와 생계가 혼란스러웠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황산벌 전투를 앞 둔 계백의 심정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을 뒤척였네.

 

레바논처럼 전운이 감돌던 가리봉 오거리.

 

가리봉시장 일대엔 전경과 백골단, 워키토키를 든 사복경찰이 쫘-악 깔렸고 감옥 같은 공장과 닭장 집을 나서 가리봉을 배회하던 핏기 없는 닭들은 멋모르고 닭장차에 실렸네. 유인물을 뿌리며 구호를 외치던 어린 여공들은 푸드득 푸드득 꽁지를 빼며 다급한 비명을 지르다 가리봉 시장으로 숨어들고 끌려가고. 고가도로와 오거리에 막힌 차들이 닭들의 몸부림을 구경하는 토요일 오후였네.

 

갑자기 뱃속에서 분노가 부글부글 끓었네.

 

가리봉 기습시위는 아랫배에서부터 차질이 빚어지기 시작했네. 그 순간 그냥 산란계(産卵鷄)이고 싶었네. 필요한 것은 짱돌이나 꽃병이 아니라 화장지였던 난 안절부절 하다 골목 변소에서 대의가 아닌 대변을 보았네. 밑 딱지 않은 자세로 볼 일을 보고 가리봉오거리에 나섰을 땐 가투(街鬪)는 초전 박살났고 닭장차에 가득 실린 닭들은 알을 생산하러 공장으로 가지 못하고 남부경찰서로 직행했네.

 

그때 나는 똥이 마려웠을 뿐이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