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방/남자일기

[그 남자의 재혼일기 22] 조호진 시인의 첫시집

침묵보다묵상 2011. 8. 4. 19:12

꽃의 화사는커녕

새의 노래는커녕

칼침에 기습당한 사내.

날지 않으리, 날개도 없으니

울지 않으리, 눈물도 없으니

새끼 둘 데리고 파산의 짐 꾸려

흉흉한 항구에서 잠적했던 사내

상한 목청으로 훠이훠이 노래 부르네.

 

(조호진 시인의 '여수블루스' 중에서)

 

여수를 슬며시 떠나야 했습니다. 잘 가라고, 잘 있으라고 인사 나눌 새도 없이 야반도주 하듯이 떠나야 했습니다. 그런 제가 염치불구하고 여수를 다시 찾아갑니다. 절망과 고통의 노래가 새겨진 첫 시집을 들고, 여수의 아픔이 새겨진 첫 시집을 들고, 가난하고 서글픈 이웃들의 삶이 새겨진 첫 시집을 들고, 끝내 사랑만이 온전케 한다는 사랑가를 부르며.

   

사랑하는 새 가족과 함께 여수를 그리워합니다. 눈물과 아픔의 지난날을 떠나보내기 마땅한 곳, 여수에서 새 삶의 출정식을 하려고 합니다. 항구 여수가 그리워서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저의 아픔을 지켜보면서 안타까워하던 선후배 및 어른들, 짠한 마음으로 기도해주고, 염려해주던 고마운 분들께 인사드리고 싶어서 찾아가려고 합니다.

 

저의 누추한 시를 낭송하며, 옛 일을 되새기며, 새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 모시려고 하오니 모쪼록 짬을 내시어서 옛 정을 함께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詩人 조호진 올림

 

 

 

2009년 515() 저녁 7시 여수YMCA 고아헌에서 조호진 시인의 첫 시집 <우린 식구다> 출판기념회를 열었는데 아주 잘 마쳤습니다. 서울에서 몸만 내려가 잔칫상을 받고 보니 감사하고 미안했습니다. 출판기념회를 위해 애썼을 뿐 아니라 놀라운 사회 솜씨로 행사를 빛내준 후배 이상훈 여수YMCA 사무총장께 감사와 애정으로 보듬어봅니다.

 

출판기념회에는 신앙의 아버지인 김정명 여수은현교회 담임목사님과 하름교회 정언용 목사님, 참 좋은 형인 삼남석유공장장 이수헌 형과 박형길 형님, 여수YMCA 이사장 천상국 형, 오광종 전 이사장님, 여수시의회 강용주 의원과 고효주 의원, 여수환경운동연합 박계성, 조환익, 문갑태, 전치수님, 여수진보연대 이광민, 시인 박두규, 김해화, 김도수, 여수시민협 한창진, 오문수, 여수YMCA 장병기 형, 김대희, 문우열, 김옥규, 전남연대회의 박두규, 여수성폭력상담소 강정희 소장과 직원들, 전교조 정회선 형, 여수MBC 박광수 기자와 이강재 등이 참석해 주셨습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보잘 것 없는 시와 출판기념회를 위해 명창의 솜씨로 자리를 즐겁해 준 소리꾼 제정화, 힘찬 시낭송을 해준 노동자 시 동인 일과시의 김해화형, 좋은 벗이자 감칠 맛 나는 말꾼-글꾼인 김도수 그리고, 아우의 출판기념회를 위해 지리산에서 달려와 주신 한치영 형과 형수님,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한 오카리나 연주자 한태주 등에게 감사의 절을 올립니다. 저의 보잘 것 없는 시 청혼시인은 비겁하다를 멋진 곡으로 만들고 불러주셔서 영광입니다.

 

 

실패와 상처로 얼룩진 인생이 고스란히 담긴 시집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아내의 성원과 격려 덕분이었습니다. 쓰디 쓴 시와 아픔의 역정을 떠나보내게 된 것은 아내의 결단 때문이었습니다. 질질 끌려가는 인생의 고리를 끊어준 아내에게 백배 천배 만 배의 감사와 사랑을 고백합니다.

 

아버지의 출판기념회를 위해 수고의 선봉에 섰던 막내아들 조솔에게도 감사의 손을 잡습니다. 저 혼자서 배운 멋진 기타 솜씨로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연주해 주어서 고맙다. 멋진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준 큰아들 조승아, 난 너의 목소리가 그렇게 미성으로 매력적인 줄 처음 듣고 알았다. 아주, 감동했어! 그리고, 출판기념회 내내 햇살이()를 돌보느라고 욕본 딸 현진아 수고했다. 그리고 어머니와 막내 동생 국진이와 조카 다솜이와 세연아 참석해주어서 고마워!

 

빗길 고속도로를 7시간 동안 달려서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짐을 풀고, 정리하고, 씻은 뒤 가족기도회를 드리면서 출판기념에 대한 간략한 소감을 나누었습니다. 저는 "옛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는 성경 구절로 저의 심경을 대신했습니다. 현진이는 "한 가족으로 더욱 서로 사랑하며 살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아내는 "하나님의 축복과 믿음 안에서, 그 가르침대로 이웃을 위해 헌신하며 사는 자녀들이 되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가정이 되게 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아쉬움 없습니다. 여탯껏 징징 짜고, 징징 거리던 것들을 떠나보내게 되어 후련합니다. 눈물의 시여 인생이여 부디 잘 가라! 이젠, 햇살 밝은 시로 노래로 만나자. 시집에 새겨진 시인의 말로 옛것과의 작별의 심경을 대신합니다.

   

시인의 말

 

20년 지난 낡은 시까지 추려 모아 첫 시집을 펴낸다.

인생이 아름답지 않았으니 시 또한 그러지 않겠는가.

시는 지치고 삶은 깨져버린 아비로 인해 눈물 삼키며

성장의 강을 건너온 내 삶의 동지였던 두 아들아

아비의 죄를 사죄하련다.

아비의 사죄를 받아주렴.

시와 눈물에 속아주면서 돕는 배필이 되어준 아내와

엄마의 뜻에 순순히 따라준 딸에게도 용서 구하련다.

시를 못 쓸 뿐 아니라 진지한 인생이 아니었으면서도

외롭고,

쓸쓸하고,

아픈 척 했던 죄 또한 뉘우치련다.

상한 영혼아!

질그릇 인생아!

다시 시작하자!

이젠 울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