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방/사랑편지

[스크랩] [그대에게 부친 연서(戀書) 29]

침묵보다묵상 2011. 8. 1. 17:50

 

숙면 들지 못하는 당신께 깊은 잠을 자달라고 당부해도 습관처럼 갑자기 깨어나곤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자정의 깨어남은 곤두선 신경 때문에 깨어난 예전의 날과는 다른 것 같았습니다. 보일러가 꺼져 있었다는 당신의 말씀, 오늘 당신의 잠을 깨운 것은 추위였던 것 같습니다. 추위에 깨어 몸이 성치도 않은데 당신은 승아에게 답신을 주었습니다. 참 미련하기조차 한 당신입니다.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당신의 목소리에는 감기 몸살 기운이 베여 있었습니다. 이를 어쩌면 좋아요. 세상 무거운 짐을 지고도 그 짐이 무겁지 않다며 달려오곤 했던 당신은 일 년에 한 번은 몸져눕는다고 했습니다. 이젠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건 좋은 방식이 결코 아닙니다. 짐을 내려놓아야 할 때는 내려놓고 쉬었다 가야 합니다.

 

주님이 그렇게 하라고 하셨듯이 당신의 의지로 모든 것을 돌파하려 하지 말고 무거운 짐을 주님께 내려놓아야 합니다. 너무 바쁘게 달려오신 당신, 이제 쉬었다 가야 합니다. 느린 것과 빠른 것의 승부에서 빠른 것이 이기는 것은 명약관화합니다. 하지만 승부의 진정한 결과는 결승점이 아니라 그 이후 입니다. 1등으로 골인하고도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면 그는 진정한 승자가 아닙니다.

 

당신의 몸은 이젠 제 몸입니다. 당신이 아프면 저도 아플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의 밝고 씩씩한 표정을 보면서 저는 대단한 에너지를 소유했다며 놀라워했습니다. 하지만 이젠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픔을 억지로 참으며 내놓는 밝고 씩씩한 표정보다 차라리 아픔을 드러내라고 할 것입니다. 저는 당신 곁에 있고, 당신이 아프면 그 아픔을 제가 지고 갈 것입니다. 더 아프기 전에 아픔을 낫게 해야 합니다. 당신은 게을러질 필요가 있습니다.

 

당신이 편안히 숙면에 취할 수 있도록 당신 곁에서 수발했다면 깊은 잠에 취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당신이 안쓰러워 지고 자책감마저 듭니다. 회식 마치고 귀가하던 당신은 저에게 전화를 걸었고, 처음으로 힘겹다는 말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난 당신은 작은 새처럼 외로워했습니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힘겨우면 힘겹다고 잔소리도 하고, 외로우면 어서 달려오라고 재촉도 하셔야 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모든 것을 다해 당신의 힘겨움과 외로움을 당신 것이 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그 시간에 당신은 깨어났고 그 사실을 알게 되어 정말 다행입니다. 제가 읽어준 시를 듣다가 잠이 든 당신, 저를 꼭 안고 자라고 한 부탁을 들어주어서 좋았습니다. 저도 당신을 안고 잠들겠습니다. 저는 당신이 행복할 때 행복하고 당신이 편안할 때 편안할 것입니다. 오늘도 "사랑해요"라는 말을 하겠습니다.

[2005-12-29]

출처 : 그남자 그여자의 재혼일기
글쓴이 : 햇살 따스한 뜨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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