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그 여자의 재혼일기 28] 남편의 외출
"밤기차를 탔습니다. 서울발 부산행 1223 무궁화호 열차로 11시 44분 청도에 도착 예정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고된 삽질 노동인 것은 분명합니다.
힘든 일 편한 일 가릴 처지가 아닙니다.
형편은 궁해졌고, 영혼은 게을러졌습니다.
야생에 길들여졌던 영혼을 깨우기에는 노가다가 제격입니다.
삶에 밑줄을 긋고 영혼을 고삐를 죄어야겠습니다.
눈물보다 센 땀방울로 승리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오후 8시 27분 남편으로부터 온 문자입니다.
남편은 오후 7시 40분, 세찬 비 속을 뚫고
기차를 타고 청도로 떠났습니다.
지난 사업 실패이후, 남편은 학교에 다시 복학해 공부에만 전념했습니다.
자연 딸의 대학등록금에, 과한 아들의 학원비, 남편의 용돈까지
생활은 쪼들렸고, 최소한의 보험만 남기고 모두 해약했습니다.
전 하나님께 "생활비 주세요" 기도했고, 놀랍게 다양한 방법으로 채워주셔서
그럭저럭 이겨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남편의 불안한 생활은 계속 됐습니다.
취재를 하고도 글을 쓰지 못했고,
구안와사의 병치료도 지지부진했으며, 그의 '갑갑증'은 밤새 잠자리를 방에서 거실로 옮기게 하더니
급기야 방에서는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모든 문을 열어놓고 자는 바람에 몸은 차가와 지고,
구안와사에 최악인 차가워진 체온은 나아질 기미는 커녕, 더 나빠지지 않는게 다행이어서
저와의 실갱이가 잦아지게 되었습니다.
방학이면, 예전에 했던 다모아 설비공사를 하기로 하여 2학기 등록금은 마련할 수 있겠다 했는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그것마저 여의치 않았습니다.
남편은 막일이라도 하겠다며 교회 집사님에게 부탁하여, 일거리를 얻었습니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앞으로 홍보쪽에서 일하게 된다면 컴퓨터를 배워두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말렸지만
수도하는 마음으로 일을 하겠다며 기어이 떠난 것입니다.
퇴근시간이 되자마자, 집으로 오니
남편은 집을 아주 말끔하게 정리하고, 화분에 물을 주고
배낭 두개에 옷과 신발을 채우고, 밀집모자에 조끼를 입고 목에 수건까지 두른 자세로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 입었냐고 투정하는 저에게
노동자가 당연히 이렇게 입어야지 하며
생각보다는 맑은 얼굴로 출발하겠다고 하였습니다.
현관에서 기도합시다 하더니
저를 껴안고, 가정을 하나님에게 부탁하는 간절한 기도를 하였습니다.
문자에서 처럼,
남편은 야생의 힘을 찾기위해,
자신이 예전에 한 그릇의 밥과 한평의 누울 잠자리를 간구하며 치열하게 하나님을 찾던 그 때를 다시 찾기 위해 떠났습니다.
전 점심 도시락에 남긴 밥과 반찬을 한 그릇에 붓고 꾸역꾸역 먹었습니다.
남편은 노동과, 그 노동의 시간에 만날 하나님을 기대하며 밤기차에 흔들리고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