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그 여자의 재혼이야기 16] 새벽일 나가는 남편 뒤에서
남편이 옛 상사와 함께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집까지 담보해서 우리로서는 거금을 투자했습니다. 대부분의 사업이야기가 그렇듯 희망찬 시작과는 달리 끝은 그리 좋지 않습니다.
그것도 시작한 지 불과 몇 달되지 않아 삐거덕 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사업 아이템은 새로운 농작물 재배 장치사업으로, 농작물이나 꽃을 힘들이지 않고 키울 수 있는 획기적인 설비인데,
옛 상사가 개발자로부터 시공권을 얻은 것이었습니다.
옛 상사의 말을 들으면서 굉장히 비전이 있는 사업으로 들렸고, 마침 직장이 없던 남편에게도 일자리가 생기는 것이기에 기꺼이 투자를 했습니다.
두 사람이 시작하는 사업계획에 저도 끼어 거들면서 우리는 사업을 시작하면서 참 많은 꿈을 꾸었습니다. ‘김칫국부터 마신다’고 하던가요? 들어오지 않은 돈을 가지고 사회사업과 선교까지 계획을 세웠으니까요.
남편과 전, 사업의 성공을 확신하면서 우리 지금보다 더 부자로 살지 말자. 아이들 공부시킬 수 있으면 충분하다. 나머지는 모두 이웃을 돕고, 선교하는데 쓰자며 나름 하나님이 듣기 좋은 약속까지 하였고, 기도도 열심히 하였습니다.
시작은 괜찮았습니다. 정부기관에서 설치의뢰가 왔기 때문입니다. 이곳을 시공하면 국내의 많은 농민들이 견학을 올 것이고, 외국에서도 시찰을 오는 곳이기에 사업시작부터 홍보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았습니다. 남편은 공사를 위해 지방에서 숙식하며 개발자와 함께 일을 하는 등 매우 의욕을 보였습니다.
남편은 그것이 노가다 중에 상노가다라는 것을 일을 하면서 알았습니다. 땅을 고르고, 그 위에 용접한 농자재를 설치하고, 거기에 레일을 깔고 등등, 남편은 일을 하면서 작업용 장화도 사고, 조끼도 입고 점점 막노동꾼의 모습을 갖추어 갔습니다. 일주일 현장일을 하다 토요일 집에 오면 끙끙 앓을 정도면서도, 자신이 노동자 출신이기에 이만큼 견딜 수 있다고 스스로 대견해 하기도 했습니다.
일은 2개월여 만에 일을 끝냈지만, 정부기관 공사는 적자라고 했습니다. 처음이니까, 수익보다는 홍보에 중점을 두었으니까 하며 이해를 했습니다. 그런데 중간 중간에 뭔가 맘에 걸리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겨우 시공을 하나 했을 뿐인데 회사대표를 맡은 상사가 사업을 접겠다는 것입니다. 부채에 쪼들렸던 상사가 자신은 전혀 투자하지 않은 투자금 2/3 가량에 손댄 것이 결국 회사 운영에 발목을 잡았고, 이로 인해 문제가 커지자 투자금을 반환하고 사업을 접겠다고 발뺌을 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사색이 든 것은 미루어 짐작이 갔습니다. 전부인의 사업 실패로 빚을 모두 껴안고 이혼한 후 그 빚을 갚기 위해 피 눈물나게 아이들과 고생을 했는데, 이제 악몽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것, 그것도 자신의 것은 하나도 없고 순전히 현재 아내의 것으로 말입니다.
저 역시 머릿속으로 계산하느라 복잡했습니다. 이대로 접게 될 경우, 아파트 담보대출 빚은 어떻게 해야 하나? 남편의 월급으로 충당했단 막내아들 기숙학원비는? 무엇보다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써야 하는지? 악착같이 무슨 수를 써서 받아낼 것인가? 그 자신이 전혀 능력이 안 된다면?
가장 걱정이 된 것은, 이제 그 가족이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개발업자가 시공권을 건네주는 조건으로 ‘교회에 나갈 것’을 제시했고, 남편은 그를 교회로 인도했던 것입니다.
가족과 의논해 기꺼이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지만, 사실 믿음이 생긴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1억과 한 가족의 생명을 바꾸어야 한다면 어찌 해야 할까요?
믿었던 상사가 자신을 속였다는 것에 남편의 분노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아, 그래야 한다면 포기하자는 말이 귀에 들릴 리 만무했습니다.
기도를 했습니다. 마음 한구석 이걸로 우리 혼자 잘 먹고 잘 살려고 한 것이 아닌데 하는 서운함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개를 숙였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왜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해도 좋은지 기도하지 않은 거니?”라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렇구나! 늘 이 모양이었습니다. 먼저 일을 저질러놓고 하나님과 협상하는 기도를 합니다. 내가 하나님 맘에 드는 일을 할 거니까 잘 되게 해주세요.
회개합니다.
남편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우선 기도하자고, 돈을 받는 것도 주님이 하셔야 하고, 또 이것이 수업료가 된다면 기꺼이 치루어야 하지 않겠냐고. 하나님은 귀에 들리는 대로 응답하시는 분이니 주님께 기쁨을 올려드리자고..
우선 예약된 2곳의 일을 마친 후에 폐업여부를 결정하기로 상사와 협의한 뒤, 남편은 두 번째 시공을 위해 지방에 내려갔습니다.
사업은 출발부터 엉망이고, 앞으로 해결할 일들은 암담했지만,
남편과 전 ‘하나님이 축복하고 계십니다’를 하루에도 몇 번씩 소리내어 외쳤습니다.
어느 해보다 폭염이 극성을 띤 올 여름, 퇴약볕 속에서 남편은 다시 일을 시작했습니다.
중얼중얼 기도하며 일을 한다고 합니다.
한푼이라도 이윤을 남기기 위해 일꾼들이 쉬는 점심시간과 참시간에도, 일꾼들이 돌아간 시간에도 일을 한다고 합니다.
여관생활을하는 남편은 화요일 저녁과 토요일 저녁에 집에 옵니다. 그리고 수요일과 월요일 새벽 5시에 집을 나섭니다.
문 앞에서 우리 부부는 껴안고 기도합니다.
남편이 기도할 때도 있고, 제가 기도할 때도 있습니다만, 내용은 비슷합니다. 우리 가정이 어떤 시련 속에서도 견고하게 서길, 아이들이 믿음의 명문가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우리 부부가 믿음에 바로 서 행하길. 오늘 하루도 주께서 지켜 주시길..
남편이 씩씩한 발걸음으로 복도를 걸어갑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꺽어지기 전 뒤돌아보며 손을 흔듭니다. 전 응원자이기에 그가 안보일 때까지 서 있습니다. 내가 여기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손을 흔들어 응원을 보냅니다.
“하나님이 축복하고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