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방/여자일기

[스크랩] [그 여자의 재혼이야기 15] 우리는 엄마 편이에요

침묵보다묵상 2011. 8. 1. 17:35

 

정말 심각하게 남편과의 관계를 어떤 식으로든 정리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사건의 말단은, 지나치게 자신의 아이들에게만 집착하는 남편때문이었습니다.

일요일 저녁, 기숙사생활을 하는 막내가 집에 오고 모처럼  휴가를 나온 큰아들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큰아들이 지방에 사는 군대 동료가 서울로 구경을 오는데 우리집에서 하루 묵어도 되냐고 합니다.

저는 ‘되는데, 방에서 놀아라’ 했습니다.

 

무더운 여름, 겨우 24평 남짓한 저의 집 거실이 좁아 장정 세 사람이 있으면 꽉 차는데다, 그들이 있으면 딸과 다른 가족이 밖에 나오기도 매우 불편하다는 생각에서 였습니다.

그런데 옆에서 고기를 굽던 남편이 신경질을 내며 ‘어떻게 더운데 방에서 놀아.’ 하더니, ‘내가 돈 줄게 여기 근처 여관에서 가서 자라.’ 하는 겁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혀를 차며 심한 말(언어를 순화시킨 겁니다.}로 화를 내기에, 저도 매우 화가 났지만 곧 기숙사로 들어갈 막내가 맘 상해서 갈까봐 아무 소리 안하고 방에 들어갔습니다.

 

화가 머리 꼭지까지 나서 ‘아, 정말 하나님 도저히 못참아요.’ 하는데, 온갖 생각이 다 들며 이대로 살면 큰일 나겠다 싶은 겁니다.

막내가 기숙사로 돌아간다고 인사를 하기에 ‘그래, 기도하면서 열심히 공부해라’하고 하니, 막내가 조용히 다가와 “엄마, 우리는 엄마 편이에요. 속상해 하지 마세요. 기도할께요.”하며 집을 나서는 것이었습니다.

큰 아들도 ‘엄마, 저도 깜짝 놀랐어요. 도대체 아빠는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그냥 좋은 말로 해도 될 걸.’하며 문자로 위로를 했습니다.

 

간혹 남편은 필요이상으로 감정을 오버해서 함부로 말하거나, 자기 감정에 복받쳐 도에 넘치게 화를 내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자기 아들과 관련되면 더욱 과해지곤 해서, 저도 가능하면 아들들에 대해서는 좋은 이야기 외에는 잘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엄마로서 필요한 말도 말하지 않게 되는 것이 많습니다.

 

저는 화가 나면 말을 하지 않습니다. 대부분 화가 나도 하루 이틀 지나면 스스로 풀곤 했는데, 도저히 자존심도 상하고 이제 편안해 지니까 우습게 보이나 싶은 것이 정말 살고 싶지 않더라구요. 직장 근처로 방을 얻어서 별거를 할까 온갖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우선 큰아들에게 "엄마가 너무 화가 나서 도저히 아빠를 용서할 수 없다. 지금부터 아빠와 냉전에 돌입하겠지만, 일부러 아빠를 혼내기 위해 그러는 것이니 너희들은 걱정하지 마라. 막내에게도 엄마가 일부러 그러는 것이니 안심하라고 해라" 알렸습니다.

모처럼 휴가를 나왔는데 부모가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이면 안될 것같아서 안심을 시킨 것입니다.

그러나 딸에게는 이 말조차 못하고 조용히 지냈습니다.

다행히 딸은 기독교육학과라서 방학의 대부분을 여름캠프에서 보내야 하기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 적었습니다.

 

 

예상한 대로, 말을 함부로 해놓고 뒷감당이 안되는 남편은 슬슬 제 눈치를 살폈습니다. 귀가가 늦은 저를 현관에서 기다렸지만, 본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미안하다는 메일이 왔습니다만 전 ‘치가 떨린다’ 라는 답신을 보냈습니다. ‘당신 아들들만 보이고, 내 딸은 짐이지?’ 하며 신랄하게 그동안 쌓였던 것을 퍼부었습니다.

 

 

이때부터 그의 장기인 오버가 시작됐습니다. 아마 공황상태에 빠진 것 같았습니다. 피신을 하는지 아빠가 지리산으로 갔다고 하는 연락이 아들에게서 왔습니다.

그리곤 장문의 글이 이메일로 날라왔는데, 기가 막혔습니다. 잘못했다는 것보다는 ‘하나님, 아내가 치가 떨린답니다. 회복할 수 있을까요?’ 하며 주저리, 주저리 하는데, ‘뭘 잘못했는지 당신 아들들하고 이야기좀 해봐라’ 하고 답신을 보냈습니다.

 

 

딸에게는 편지를 보낸 모양인데 오히려 역효과가 났습니다.

 “엄마, 난 아빠와 벽을 느낀 적이 없었는데, 아빠 편지를 보고 아빠가 그랬구나 하고 서운한 생각이 들더라고, 그러고 보니까 막내를 엄청 챙기는 것이 보이는 거야. 엄마랑 무슨 일이 나겠구나 생각했는데, 엄마랑 사이가 좋더라구. 난 다시 아빠가 뭐라고 말하겠구나 했는데, 그리곤 아무 말도 없는 거야.”

아마도 ‘막내가 어려서 상처를 받아 내가 과하게 챙긴다. 너에게 다가가지 못해서 미안하다, 용서해라’ 라는 편지를 받은 모양입니다.

 

저녁에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데 큰아들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 우리 지금 한강변에 있는데요, 아빠가 우리들이랑 말좀 하자는데요. 그동안 엄마랑 나누었던 말 다해도 돼요?”

전 ‘엄마가 너희들하고 이야기좀 해보라고 한거니까, 마음대로 이야기해’ 했습니다.

 

그리고 두 시간쯤 지났을까.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아빠랑 이야기 했는데, 아빠가 잘못한 것 같다고 하면서 같이 기도했어요.

아빠랑 막내가 울었어요. 아빠가 우리 더러 엄마 기분좀 풀어달래요. 지금 엄마 사무실로 가도 돼요?”

 

 

어땠냐구요? 속없이 경보해제했지요.

 

후에 남편에게 무슨 말을 나누었냐고 물으니, ‘나중에’ 하며 대답을 안합니다. 그러나 남편이 이것은 확실하게 깨달았을 것입니다. 아들들은 엄마 편이라는 것을!

출처 : 그남자 그여자의 재혼일기
글쓴이 : 햇살 따스한 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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