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그 여자의 재혼일기 3] 뻑이 가요, 뻑이 가!
전 재혼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직업에 대한 만족감도 높았고, 수입은 딸과 함께 쓰기에 넉넉하여 대학원도 다니고,
일 년에 한번쯤 외국 여행도 다녀올 정도는 되었으니까요.
사실 이런 것이 아니면 돈 쓴 일도 별로 없었습니다. 그 외의 일들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도 취미도 없었으니까요.
더욱이 딸이 졸업하면, 모든 재산을 정리해서 미얀마에 가서 버려진 여자들을 위한 직업학교를 세워
교육 후 사회에서 떳떳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사역을 생각하고 신학대학원에 다니기도 했습니다.
만약 그가 기자가 아니라면 냉정하게 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나의 주요업무는 홍보여서 기자들과 잘 지내야 했기에, 일로 다가오는 그에게 냉정할 수 없었지요.
그동안의 경험에 의하면, 기자들이 좋은 것에 대해서는 별 영향력이 없지만, 나쁜 일에 대해서는 영향력이 크다고 알고 있었고,
당시 우리 기관이 큰 어려움을 겪고 난 이후라 더더욱 조심스러웠습니다.
뭐, 같은 기관에서 자원봉사를 하게 된 사이니 냉정하게 대할 이유도 별로 없었고요.
그런데 곧 그가 본격적인 흑심(?)을 드러내며 들이대더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싫지가 않더라는 겁니다.
혼자 사는 사람이라는데, 연애나 하면 어떻겠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결혼의 싫고, 한 십년 연애나 하죠!”
결혼은 싫었습니다. 결혼이라는 것이 당사자 간의 문제가 아니라, 시댁과 친정이라는 인간관계로 의무가 많아지는,
챙겨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이미 익히 알고 있는 저로서는 달갑지 않을 수 밖에요.
이 나이가 다시 눈치를 보며 살아야겠습니까? 더욱이 제게는 누구보다 무서운 열일곱 살의 딸이 있었으니까요.
제 반응을 몹시 두려워 하던 그는 어쨌거나 만나기는 하자니까 안도하는 표정이 되더니 냉큼 좋다고 하더군요.
사실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으면서 말입니다.
그 다음부터 쏟아지는 문자와 메일들….
'그대에게 보낸 연서’를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참 마음이 움직일 수 밖에 없지 않나요?^^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이면 “어서 오세요. 당신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져요. 내 심장도 더욱 강하게 뛰어요. 사랑하는 이여”라는 문자가 날아옵니다.
문자 하나 하나가 시였습니다. 어찌나 다정하고 살갑던지 닭살이 돋을 때도 많았습니다.
오래 전 ‘내 이름은 김삼순’이라는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자주 이런 말을 했지요.
“뻑이 가요, 뻑이 가.”
날이 갈수록 하루에도 몇 번씩 오는 문자를 날짜와 함께 다 기록해 나갔는데,
우리 직원이 컴퓨터를 청소해 준다고 하면서 내장을 계단에서 떨어뜨려 다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메일과 문자로 내 마음은 점점 그에게로 빠져 갔고, 그럴수록 혼란도 커져갔습니다.
십 년 연애나 하자던 그는 은근히 결혼을 압박해 왔고, 그를 버리자니, 그의 지나온 상처가 너무 큰데,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할 것 같았습니다.
무엇이든 그대로 말하는 제가 그에 대해 주변 사람들에게 연애 사실을 말하니, 어쩜 하나같이 반대를 하는 것입니다.
모두들 제가 미쳤다고 하네요. 어쩌려고 그러냐고, 심지어 '너 변태지?’하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그래서 친정 오라비보다 가까웠던 분과 다투어 상처를 입고, 입히기까지 했습니다.
엄마는 울고불고(사실 진실에 10분의 일도 이야기 안했는데) 난리고, 직장 상사도 화를 내고, 친구와 주변 사람들은 철없는 사람으로 보고.
사실 저라고 계산 속이 없었겠습니까? 아무 것도 없는 것보다 더 나쁜 상태에서 언감생심(焉敢生心) 나와 결혼하겠다니, 얄밉기까지 했습니다.
그에게 대놓고 “당신은 정말 나쁜 놈이야.”하고 말하니, 그는 순순히 인정하며 “맞아요.”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나보고 결혼하자고 하는데요?”
“나도 당신과 같은 사람을 원한 건 아니예요. 중학교 정도 나온 착한 여자면 된다고 했는데, 하나님이 당신과 결혼하게 될 거라고 했어요.”
참, 뻑이 갑니다. 뻑이 가요.
이렇게 쏘아 붙였지요.
“하나님더러 당신에게 말하지 말고, 나에게 말씀하라고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