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방/남자일기

[스크랩] [재혼일기 16] 중간고사

침묵보다묵상 2011. 8. 1. 17:27

 

 

중간고사 기간인데 푸념처럼 글을 쓰고 있습니다. 3학년 1학기 중간고사엔 모두 4과목을 시험 봅니다. 지역사회복지론, 사회복지개론, 사회복지조사론 등 사회복지분야 3과목과 상담심리학 1과목 등 모두 4과목입니다.

 

오늘(21일) 오전 10시에 본 첫 시험 '지역사회복지론'을 예상대로 망쳤습니다. 아내는 학점에 연연하지 말고 무사히 졸업만 하라고 하지만 성적표를 보면 딴소리 합니다. 나도 열심히 공부하고 싶은 마음 굴뚝같습니다. 초지일관 학업에 전념해서 '평균 4점이 넘는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만학도'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역경을 이긴 만학도의 인간승리 스토리를 엮어내고 싶습니다.

 

어제오늘은 후배가 운영하는 잡지사에 보낼 원고마감에 쫓기다 방금 보냈습니다. 엊그젠 분신자살한 재중동포 문제로 시간이 많이 소요됐습니다. 그렇게 쫓기다보니 공부할 시간이 있다 해도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겁니다. 공부란 게 책상에 앉았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란 걸 새삼 확인하고 있습니다.

 

어제 종일 원고 때문에 끙끙거리면서도 '시험공부는 언제 하노! 아, 인생이여!' 투덜투덜 조마조마하다가 자정 넘어서 잠들었는데 시험이 무섭기 무서운가봅니다. 꿈에서 시험에 쫓기다 새벽에 깨어났습니다. 일찌감치 씻고서 평상시 등교 때보다 1시간30분 이르게 학교에 도착, 강의실 들어서니 수녀님이 나보다 앞서서 시험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일찍 일어난 새가 벌레를 잡는다'란 말처럼 저 수녀님이 나보다 훨씬 시험을 잘 볼 것이고, '당근' 학점도 앞설 것입니다.

 

아무리 나를 생각해도 학생 본연의 자세가 되어 먹질 못했음을 탄식처럼 토해냅니다. 공부할 자세가 되어 있다면 전철 안에서 교재나 강의노트를 봐야할 텐데 그렇게 하질 못하고 <한겨레신문>이나 시집을 펼쳐들고 시간을 잡아먹곤 했던 것입니다. 난 지금 반성하면서 나의 행위를 되돌아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만큼은 신문을 접어버리고 강의노트를 펼쳐들었습니다. 전철 안에서도, 셔틀버스 안에서도, 걸어가면서도, 화장실에 갈 때도, 커피 뽑으러 갈 때도 강의노트를 놓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험은 망쳤습니다. 급한 밥은 설익기 마련인 것을. 진즉에 그렇게 하지 ㅉㅉㅉ! 이제 남은 것은 교수님의 선처를 구하기 위해 읍소해야 하는 것인가요.

 

"아빠, 제가 대신 시험 봐 줄까요! 히히^^"  

 

 

좀 전에 큰아들(08학번 휴학)과 전화통화를 했습니다. 알바를 마친 아들이 아빠 걱정 때문에 전화를 한 것입니다.

 

"아빠 시험 잘 봤어요?"

"시험지는 잘 봤는데… 쩝!"

"아빠, 제가 대신 시험 봐줄까요! 히히^^^"

"야아, 정말 그래주면 좋겠다!"

"아빠! 커닝은 그래도 괜찮지만 대리시험은 안돼요!"

 

"야, 임마! 아빠도 잘 알아! 오죽하면 이런 소리가 나오겠냐. 그런데 아빠하고 같이 시험 본 복학생 하는 말이 '복학하면 A+ 받을 줄 알았는데 완전 망했어요!'라며 한숨 쉬는데 2년 후면 너도 이렇게 될 수도 있으니 열심히 공부해야 돼!"

 

"알아요, 아빠! 알았으니까 나머지 시험 잘 보세요!"

"알았어, 넌 집안 청소나 하고 '햇살'(입양한 유기견)이 똥이나 잘 치우고 있어!"

 

아, 시험! 주기도문처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며…' 이런 것 말고 '제발 시험에 들게 하옵시며…'라고 주억거리고 있습니다. 시험 보면서 막내아들(고2)의 심정도 조금은 이해하게 됐니다. 무쉰 놈의 시험이 그리도 많은지 아 이놈의 시험공화국! 막내아들아 힘내라 힘!

 

그런데 왜 인간성에 대해선 시험을 보지 않는 것인가! 그러니 인간성은 '개싸가지'면서도 공부 잘하는 것 하나로 출세하는 개싸가지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된 것이라고 소리친 어떤 만학도의 주장이 떠오릅니다. 맞아, 중요한 건 인성이라고 인성! 이런 헛소리도 늘어놓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이거 가방끈 늘이려다 생명 끈 짧아지는 거 아냐!'

 

블로그가 왜 그래! 완전 개점휴업이야!

 

도서관 밖으로 나와 한숨을 들이키다가 [재혼일기] 블로그 개설을 촉구한 선배와 전화통화를 나누었습니다.

 

"조형, 요즘! 블로그가 왜 그래! 완전 개점휴업이야!"

"개강한 뒤 학교 다니랴 리포트에 쫓기랴 뭐 정신이 없습니다."

"블로거는 정식 기사처럼 글을 쓰려는 근엄한 얼굴을 버려야 해. 잠깐 짬을 내서 단상이라도 그냥 쓰는 게 블로그의 장점인데, 바로 학교 다니고, 리포트 이야기를 쓰면 되겠네."

 

"예, 그렇게 하렵니다. 그런데 오늘은 중간고사 시험기간이라서…."

"어렵게 생각할 것 없소. 그 시험 보는 어려움을 한두 줄이라도 쓰면 되지!"

"알겠습니다. 머리도 아프고 공부도 안 되는데 한두 줄이라도 쓰겠습니다."

 

통화 끝낸 뒤 글을 쓰고 있습니다. 어려운 것 대신 손쉬운 것을 택하는 것, 이를 심리학적 용어로 ‘회피’라고 합니다. 회피의 수단으로 시험공부 대신 글을 쓰고 있습니다. 코가 석자인데 이러고 있는 내가 한숨이 나옵니다. 오늘 저녁 8시엔 상담심리학 시험을 봅니다. 시험범위는 왜 그리 넓은지. 그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열공 모드에 돌입하자, 열공!

출처 : 그남자 그여자의 재혼일기
글쓴이 : 햇살 따스한 뜨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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